지난 6월 10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 바스티유 극장.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을 앞둔 발레리나 박세은에게 그녀가 소속된 파리오페라발레단(POB)의 오렐리 뒤퐁 예술감독이 꽃다발을 보내왔다. 그동안 POB의 많은 공연에서 주역으로 무대에 섰지만, 예술감독으로부터 꽃 선물을 받기는 처음이었다. 선물은 그 자태와 향기 만큼이나 아름다운 소식을 의미했다. 바로 수석 무용수인 ‘에투알(etoile·별)’로의 승급 메시지였다. 이날 공연 후 이어진 커튼콜에서 박세은은 동료 무용수와 관객이 지켜보는 가운데 에투알로 호명돼 무대에서 박수 갈채를 받았다.
“아직도 보여줘야 할 춤이 정말 많아요. 지금부터가 또 시작이란 생각 뿐입니다.”
동양인 최초로 프랑스 POB의 에투알 자리에 오른 발레리나 박세은이 금의환향했다. 이번 시즌을 마무리하고 지난 15일 잠시 귀국한 박세은은 19일 서울 삼성동 마리아칼라스홀에서 열린 귀국 기자간담회에서 “커리어 상으로는 내가 올라갈 수 있는 곳까지 갔지만, 아직 하고 싶은 작품과 춤이 많다”고 소감을 밝혔다. 코로나 19 백신 접종 후 입국한 박세은은 자가 격리를 면제 받았고, 그의 소속사 에투알클래식은 서울시와 강남구의 허가를 받아 이번 간담회를 오프라인으로 진행했다.
승급 순간을 떠올리는 박세은의 얼굴에는 그날의 감동이 생생하게 묻어났다. “아직도 신이 난 상태죠. 실감은 9월 24일 왕관을 쓰고 행진할 때 나려나요.” POB는 매년 시즌 시작 전 발레단 아카데미 학생부터 에투알까지 총 200여 명이 순서대로 무대로 걸어 나오는 행진 행사를 연다. 에투알은 시즌의 시작을 알리는 이 퍼레이드의 마지막에 왕관을 쓰고 입장한다.
승급이 발표되던 순간 박세은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지난 10년 간 겪은 고민과 아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박세은은 “러시안 발레를 하다 프랑스로 가면서 처음부터 다시 춤을 배워야 했다”며 “‘감정 표현 없이 기술적인 부분만 뛰어나다’는 평가를 뛰어넘기 위해 정말 많이 노력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간절함과 인내심으로 10년 동안 조금씩 바뀌고 성장해 간 내 춤을, 자신들의 춤에 대한 자부심이 큰 프랑스 관객들이 좋아해 준다는 의미라 더 감사하다”고 웃어 보였다.
POB 무용수는 카드리유(군무)-코리페(군무 리더)-쉬제(군무와 주역을 오가는 솔리스트)-프리미에 당쇠즈(제1무용수)-에투알 등 5개 등급으로 나뉜다. 박세은은 2011년 오디션을 통해 한국 발레리나로는 처음으로 준단원으로 입단했다. 이후 2012년 정단원, 2013년 1월 코리페, 11월 쉬제, 2016년 프리미에 당쇠즈를 거쳐 입단 10년 만에 에투알이 됐다.
1669년 창단한 POB 역사에서 아시아 출신 에투알은 그녀가 처음이다. 이 ‘최초’ 타이틀은 무수한 땀과 고민, 방황 위에 피어났다. 언어의 장벽은 물론이고, 러시아에서 프랑스로 춤 스타일을 바꾸는 과정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던 때도 있었다. 군무 무용수로 출발해 2분 짜리 솔로 춤으로 모든 것을 표현해야 하는 승급 시험들에 통과해야만 자신이 추구하는 예술 세계를 온전히 보여줄 있다는 점이 괴로울 때도 있었다.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걸까’,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드는 순간, 박세은은 혼자 속앓이를 하지 않고 동료와 친구, 선생님과 끊임없이 대화했다. 그렇게 “주변에 많이 물어보고 이야기를 나눈 것이 답을 찾는 데 큰 도움이 됐다”고 ‘별’이 된 박세은은 말한다.
그렇게 추고 또 췄지만, 아직도 하고 싶은 작품, 만나고 싶은 관객이 많다. 돈키호테, 라 바야데르, 마농…. 작품 명을 줄줄이 늘어놓는 그녀는 내내 행복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내년 여름께는 갈라 공연으로 국내 팬들과 만나겠다는 구상도 갖고 있다.
“제가 보여드려야 할 춤, 관객들이 봐야 할 춤이 너무 많아요. 하는 일에 집중해서 에투알 중에서도 가장 큰 에투알이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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