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관련 공시 중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정작 국내에서 지속가능경영 보고서 공시 실태는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단순 비재무정보 공시 보고서의 양뿐 아니라 질적으로도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다는 진단이다. 일각에서는 공시 품질을 높이기 위해 중장기적으로 회계 업계의 ESG 공시·인증 보수 현실화까지 염두에 둬야 한다는 진단도 나온다.
28일 한국표준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발간한 기업 수는 총 110곳에 달했다. 이는 지난 2019년(136곳)에 비해 19.1% 줄어든 수치다. 최근 각국 기업들이 비재무정보 보고서 발간을 늘리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나라에서 ESG 공시에 소홀하다는 지적이다.
기업들이 ESG를 기업 전략을 위한 수단이 아닌 단순 사회 공헌, 홍보를 위한 ‘겉치장’ 수준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코로나19로 인해 기업들이 판매비와 관리비를 줄이면서 홍보비 성격의 비재무정보 공시도 함께 줄였다는 것이다. 한 회계법인의 ESG 담당 임원은 “많은 기업이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홍보 차원의 사회적책임(CSR) 보고서 정도로 인식하고 있으며 보고 역시 형식적인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ESG 공시의 질적 수준 역시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준희 대구대 회계학과 교수는 이달 ‘월간 공인회계사’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지난해 발간된 지속가능경영 보고서 중 95.95%가 GRI 기준을 따랐다고 설명했다. GRI는 세계적으로 오래된 ESG 공시 기준이지만 원론적인 내용이 많아 TCFD나 SASB 등 비교적 최근에 나온 기준에 비해 구체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회계 업계에서는 오는 2025년부터 자산 2조 원 이상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에 대해 지속가능경영 보고서 발간이 의무화하면 비재무정보 공시의 양·질도 높아질 것이라고 보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ESG 공시를 자율에 맡기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품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만 ESG 보고서 인증에 회계법인 등 ‘제3자’의 활발한 참여가 전제돼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글로벌 회계법인 KPMG에 따르면 주요 52개국별 상위 100대 기업 중 64%의 비재무공시 인증에 회계법인이 참여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이것이 4%에 불과했다.
장기적으로는 ESG 공시 인증·검증 보수 현실화도 논해야 한다는 해석이다. 정 교수는 “회계감사의 경우에도 너무 낮은 보수를 내면 상대적으로 분식회계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며 “ESG 보고서에도 낮은 비용이 들어가면 내용이 형식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비용 최적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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