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가 강하게 밀어붙인 ‘탈(脫)원전’ 정책의 영향으로 장기간 억눌려왔던 원자력 기술 기업들의 주가가 폭등해 상한가 종목이 속출하는 이변을 낳았다. 지난달 21일(현지 시간)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이뤄진 해외 원전 사업 공동 진출 합의가 주가의 기폭제가 됐다는 것이 중론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지난해부터 이어진 증시의 상승장 속에서 원전 관련주만이 현 정부의 정책 탓에 유독 소외받았기에 반등이 더욱 큰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코스피·코스닥 양대 증시에서 상한가를 기록한 8개 종목 중 7개가 원전 관련주였다. 원전 정비 업체인 한전산업(130660)과 전력 발전용 기자재 전문 기업인 보성파워텍(006910), 원전 제어 설비 기술을 보유한 우리기술(032820), 방사능 제염 기술을 보유한 우진(105840) 등 7개 기업이 일제히 가격 제한선까지 주가가 치솟았다. 상한가는 아니지만 발전소에 사용되는 탈질 설비를 설계·생산하는 기업인 SNT에너지(100840)와 소형모듈원전(SMR) 관련 기술을 보유한 일진파워 등 관련주도 이날 하루에만 각각 주가가 24.54%, 22.22%씩 껑충 뛰었다.
특히 원전의 핵심 기자재를 생산할 수 있는 기술력을 보유해 원전 대장주로 꼽히는 두산중공업(034020)의 주가 상승세는 눈부셨다. 두산(000150)중공업은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해외 원전 사업 공동 진출 합의가 이뤄진 다음 거래일인 지난달 24일부터 이날까지 단 하루를 제외하고 매 거래일 상승 마감했는데 이 기간 주가 상승률은 128.06%에 이른다. 두산중공업이 강한 주가 흐름을 보이자 지주사인 두산은 물론 관련 계열사들 역시 주가가 점프했다. 특히 이날은 두산중공업(27.49%)을 시작으로 두산(16.91%)·두산우(15.51%)·두산2우B(상한가)·두산인프라코어(11.00%)·두산퓨얼셀(5.27%) 등 그룹주 전반이 강한 상승세를 보였다. 그 결과 이날 두산그룹의 시가총액은 전날인 26조 1,683억 원에서 3조 원 이상 늘어난 29조 9,012억 원으로 집계됐다. 한미정상회담이 열리기 전의 시총인 19조 3,824억 원과 비교하면 10조 원 이상 몸집이 불어난 셈이다.
전문가들은 원전 관련주의 급등이 한미정상회담에서 발표된 ‘한미 원전 동맹’을 시작으로 줄줄이 발표된 일련의 호재들과 관련이 깊다고 보고 있다. 이민재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미국과의 협력을 통해 (국내 원자력 기업들이) 해외 수주에서 강해질 것으로 전망된다”며 “이집트·사우디·영국·체코 등 현재 입찰이 진행 중인 해외 원전들을 중심으로 원전 수출이 이뤄질 가능성을 눈여겨봐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다 최근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와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이 SMR을 짓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며 차세대 원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과 국내 기업의 체코 원자력발전소 건설 사업 수주에 청신호가 켜졌다는 소식들이 전해진 것도 호재로 꼽힌다.
일각에서는 한미정상회담을 계기로 국내 탈원전 정책이 변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주가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 정부의 강력한 탈원전 정책으로 인해 원전 관련주는 4년 가까이 소외돼왔다”며 “지난해 연말부터 코스피가 가파르게 급등하는 등 상승장을 겪는 과정에서 대부분 종목들의 주가 역시 함께 오른 감이 있는데 원자력은 그중에서도 유독 소외돼 이번에 반등이 큰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한미정상회담 이후로도 정부는 탈원전 기조의 변경 등에 대해서는 전면 부정하고 있지만 해외를 중심으로 SMR 등 원자력이 탈석탄·탈석유를 이룰 신재생에너지의 대안으로 자리매김한다면 분위기가 크게 바뀔 수 있다는 기대감이 반영된 것으로도 보인다”고 설명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아직 원자력 기업들의 주가 상승이 실제 수주나 실적에 기반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 투자에 유의할 것을 권하고 있다. 일례로 두산중공업의 경우 올해 1분기는 흑자를 냈지만 지난해까지 6년 연속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바 있다. 최남곤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두산중공업 측은 영업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연간 수주액 마지노선을 5조 원으로 제시했다”며 “목표 달성이 중기적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석탄, 담수, 건설, 국내 원자력 등 기존 사업을 대체하는 재생에너지 사업 전환이 성공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경미 기자 km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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