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050년 ‘탄소 중립’과 ‘국가 경쟁력 향상’을 위해 우리나라가 민간 주도 수소 생태계를 선도적으로 구축하는 ‘뉴 하이드로젠(New hydrogen)’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현재 미국·유럽·중국·일본·호주 등이 수소경제 구축에 적극 뛰어드는 상황에서 판을 주도하기 위해서는 민간 생태계 활성화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서울경제가 12일 화상으로 개최한 ‘수소경제 활성화 특별 좌담회’에서 전문가들은 정부가 수소경제 구축에서 기업들을 전폭 지원하고 산학연 간 연구개발(R&D)을 촉진해 뉴 하이드로젠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 하이드로젠은 우주 분야에서 정부와 공공 기관이 이끌던 방식에서 점차 기업들이 주도하는 쪽으로 바뀌는 뉴 스페이스(New Space)를 수소경제에 빗댄 말이다. 이번 좌담회는 본지가 오는 6월 9~10일 ‘대한민국 에너지 대전략:초격차 수소경제에 길이 있다’를 주제로 비스타워커힐서울에서 개최하는 ‘서울포럼 2021’을 앞두고 열렸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게임 체인저’가 될 수소경제를 주도할 역량을 갖추기 위해서는 정부가 원천 R&D 지원과 인재 양성, 인프라 구축, 법·제도 정비와 국제 표준화 노력에 속도를 내고 수소 기업들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참석자
·김종민 국회 수소경제포럼 공동대표
·주영준 산업통상자원부 에너지자원실장
·김세훈 현대자동차 부사장
·김재경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
·하성규 한양대 기계공학과 교수
◇사회
·고광본 선임기자(부국장)
△사회=정부가 지난 2019년 1월 ‘수소경제 로드맵’을 발표하고 올 2월부터 세계 최초로 수소법(수소경제 육성 및 수소 안전관리법) 시행에 들어갔는데 이제는 민간이 주도하는 생태계를 구축해야 하는 시점이 됐다. 이를 뉴 하이드로젠 시대라고 명명해봤는데 수소 생태계를 꽃피우기 위해 어떻게 하면 좋겠나.
△김재경 연구위원=수소 생태계를 시장 중심으로 전환하는 게 화두다. 뉴 하이드로젠 시대라는 작명이 와 닿는다. 수소 로드맵을 만들 당시에는 정부가 현대자동차와 두산 등 기업과 합심해 수소차와 수소연료전지(수소를 전기로 바꾸는 장치) 등 수요를 어떻게 키우고 수소 공급을 잘할 수 있느냐가 핵심이었다. 그때는 석유화학·정유사, 제철사가 관망세여서 한국가스공사가 나서 수소를 공급하자고 하던 정부 주도 방식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 들어 기업들이 수소를 공급하겠다고 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수소차와 연료전지 보급 등 정부의 여러 계획이 있지만 실현까지는 약간 불확실성이 있다. 정부가 수소 가격을 2030년까지 ㎏당 3,000원대로 지금보다 절반 이상 낮춰 잡았는데 기업들이 수익을 낼 수 있게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
△김세훈 부사장=19년째 수소연료전지를 연구했는데 계속 수소는 안 된다는 얘기를 듣다가 지난해부터 탄소 중립을 위해서는 수소 없이는 안 된다는 공감대가 국제적으로 형성됐다. 수소경제 관련 글로벌 최고경영자(CEO) 협의체인 ‘수소위원회’에 속한 외국 회사들과 얘기를 해보면 한국이 수소경제에서 제일 앞서갈 것이라고 믿는 곳들이 많다. 저도 놀랐다. 탄소 중립이 화두인데 2050년에 화석연료를 못 쓰게 된다는 것을 가정하고 누가 경제적으로 수소 등 친환경 에너지를 만들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이것은 생존의 문제다. 세계적으로 지난해 유럽연합(EU)과 독일이 수소 장기 로드맵을 내놓으며 엄청난 투자 계획을 밝혔다. 미국·중국·일본 등의 계획도 어마어마하다.
△주영준 실장=우리나라가 수소차와 연료전지 발전에서 세계 1위다. 수소법을 제정한 뒤 민간에서 적극 참여하고 있다. 올 3월에 SK 18조 5,000억 원, 현대차 11조 1,000억 원, 포스코 10조 원 등 민간에서 43조 원의 수소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수소, 2050 탄소중립·국가경쟁력 좌우할 '게임 체인저'
美·中·유럽 등 엄청난 투자 계획 밝히며 주도권 확보 치열
韓, 수소차·연료전지 앞서지만 부존자원·핵심 기술 미미
△사회=국회 수소경제포럼 공동대표로서 김종민 의원의 생각은 어떤가.
△김종민 공동대표=다른 산업에 비해 수소 쪽은 변화가 심하다. 2년 전만 해도 현대차가 수소차보다 전기차에 집중해야지, 자칫 망할 수도 있다는 얘기마저 있었다. 전문가 사이에 컨센서스가 모아지고 국회에서 정책 판단을 할 수 있도록 긴밀한 연결 고리를 만들어야 한다. R&D 경쟁력을 키우고 인재를 육성하고 수소 산업화를 위한 인센티브는 어떻게 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현재는 수소 생산 과정에서 온실가스가 나오는데 청정수소 체계로 바꾸는 것도 과제다. 탄소 중립을 위해 화석연료 기반인 그레이수소에서 벗어나 청정수소로 가기 위한 획기적인 모멘텀을 만들어야 한다. 물을 전기분해해 만드는 그린수소와 수소 생산 과정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이산화탄소 포집·활용·저장(CCUS) 기술로 감축한 블루수소로 바꿔나가야 한다.
△사회=기후위기 시대에 2050년 탄소 중립이 글로벌 화두다. 수소법을 개정해 청정수소 의무 지원 방안 등을 담는 것이 필요한데.
△주 실장=현재는 액화천연가스(LNG) 등에서 나오는 추출수소와 석유화학·철강 공정의 부산물인 부생수소를 주로 활용해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 앞으로 입법 과정을 거쳐 청정수소를 일정 부분 의무적으로 쓰는 청정수소발전의무화제도를 도입해 청정수소를 조기에 활용할 수 있도록 유도하겠다.
△김 연구위원=에너지경제연구원은 산업통상자원부와 함께 내년부터 시행을 준비하고 있는 수소발전의무화제도(수소연료전지로 생산한 전력의 일정량 구매 의무화)에서 나아가 청정발전의무화제도를 준비하고 있다. 수소 생산 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를 평가해 청정수소인증제도와 연계해 의무화하거나 청정수소에 인센티브를 주려고 한다. 발전뿐 아니라 수송도 일정 부분 청정수소를 사용하도록 제도를 준비해야 한다.
△사회=미국·유럽·일본·중국 등이 수소경제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다. 고난도 수전해 기술의 경우 미국과 독일은 산업화 단계인데 우리는 걸음마라는 주장도 나온다. 우리의 수소경제 수준을 해외와 비교한다면.
△주 실장=2019년 1월 수소경제 사회 선포가 결코 늦은 게 아니다. 다만 기업들의 적극적인 투자로 수소차·연료전지 분야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췄으나 타 분야에서는 기술 격차가 분명히 존재한다. 정부는 R&D 지원, 공공 조달을 통한 제품 상용화를 늘리겠다. 수소 생산, 저장·운송, 활용 전 분야에서 ‘수소 기술 개발 로드맵’을 수립해 연내 R&D 예비타당성 검토를 추진할 것이다. 기업들이 해외 기업 인수합병(M&A)이나 기술제휴에 나설 때도 지원하겠다. 해외에서 청정수소를 도입하기 위해 사전 타당성 조사를 올 상반기 중 완료해 어디에서 도입할지 정하겠다. 기업·공기업·연구기관 30곳이 지난해 결성한 ‘청정수소해외사업단’을 통해 안을 공유하고 협의하겠다.
△김 연구위원=수소법은 우리밖에 없는 것처럼 정부가 기업과 전문가의 요청에 상당히 빨리 반응한다. 하지만 수전해 기술이 아직 많이 갖춰지지 못했고 세부 기술에서 경쟁력이 부족한 면이 있다. 물론 발전용 연료전지는 상당히 앞서 있다. R&D를 열심히 한 결과다. 가장 큰 약점은 수소를 만들 수 있는 부존자원의 부족이다. 재생에너지 기반 수소 체계로 가야 하는데 다른 나라와 비교해 국내 재생에너지가 비싸다. 결국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국가에서의 수소 수입을 적극 고려해야 한다.
△김 부사장=일본은 이미 호주에서 생산한 수소를 두 번 액화수소로 가져왔고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에서 블루수소로 만든 암모니아를 수입하기도 했다. 암모니아를 분해하면 수소를 추출할 수 있고 액화가 쉽다.
△하성규 교수=현대차 등이 선제적으로 잘하고 있고 두산·SK·포스코·한화·현대중공업·효성 등 다른 기업들도 적극 노력하며 성과를 내려 하고 있다. 수소 생산·운송·적용 분야에서 다양한 기술이 개발되고 있는데 사회 인프라에 맞게 최적의 기술을 산업화해야 한다.
△사회=수소경제 사회를 위한 그랜드 전략이 필요한 시점인데.
△김 공동대표=수소가 경제 전체의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 정부가 3대 전략산업으로 인공지능(AI)·바이오·자율주행을 정했는데 수소를 추가해야 한다. 호주 등 재생에너지 잠재력이 큰 나라와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등 그랜드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이는 산업 전략 차원을 넘어 외교 전략이다. 전체 그림을 6개월 단위로 업데이트해 정부와 기업·연구계·국회가 공유해야 한다. 아울러 재작년 7월 일본이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의 한국 수출을 규제하며 소재의 중요성이 부각됐는데 수소 저장·운송에서 소재 산업을 키워야 시너지가 날 수 있다.
△하 교수=맞는 말씀이다. 예를 들어 고압의 수소를 담는 용기는 가벼운 탄소섬유로 만드는데 도레이섬유 등 일본 업체가 세계시장의 60~70%를 차지하고 있다. 국내에서 탄소섬유로 수소 용기를 만들어 인증을 받도록 도움을 주려고 한다. 수소 배관을 깔 때도 소재 기술이 매우 중요하다.
△김 부사장=수소 등 전체 에너지 로드맵을 짜고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수소의 경우 그린수소든 블루수소든 신재생 수소 수입 루트를 만들고 수소 배관을 널리 깔아야 한다. 유럽도 큰 그림을 보고 수소 배관을 깔며 수소 공급가격을 크게 낮추려 하고 있다.
△사회=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해 국제 표준 선점도 필요한데.
△김 연구위원=세계적으로 초기 단계인 수소경제에서 우리의 기술을 국제 표준에 반영하면 기업들이 세계시장을 선도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국내 기업이 해외 표준이나 인증 기준을 따를 경우 추가 비용이 든다. 수소충전소와 수소 저장·이송 관련 안전성 평가를 비롯해 재생에너지 연계 수전해 설비, 고효율 열·전기, 수소 생산 시스템, 드론·선박, 복합발전 연료전지 시스템의 성능 평가에 관한 국제 표준을 선점할 필요가 있다. 먼저 이 같은 기술과 관련해 국내 KS 기준을 확립하고 이를 국제 표준에 반영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주 실장=정부도 이 부분에 각별히 신경 쓰겠다.
호주 등 재생에너지 강국과 손잡고 '그랜드 전략' 마련
저장 용기 등 소재산업 키우고 수입 루트·배관 구축 필요
기업들 투자 발맞춰 정부도 인센티브·법 개정 속도내야
△사회=정부와 국회는 수소경제 실현을 위해 어떻게 뒷받침할 것인가.
△주 실장=복층형 수소충전소라든지, 안전을 중시하며 규제 설정과 개선에 나서겠다. 현재 규제자유특구에서 이동식 충전소(울산), 액화수소 인프라(강원), 연료전지·드론충전소(충남), 고압·대용량 튜브트레일러 용기(전북)를 실증하고 있다. 규제 샌드박스에서는 수소 저장용 복합재료 용기, 수소트램 주행, 모빌리티 통합형 수소충전소, 도심형 수소충전소를 실증 중이다. 주거·교통 등에 수소를 활용하도록 2019년 안산, 전주·완주, 울산을 수소 시범 도시로 정했다. 수소 클러스터를 인천·전북·강원·경북·울산에 구축하기 위해 연내 예타를 추진하려고 한다. 수소 저장·운송 인프라도 기체·액체·액상·배관 등 다양한 방식으로 추진하겠다.
△김 공동대표=지난해 7월 정부의 수소경제위원회(위원장 국무총리) 신설이나 수소충전소 확충 예산 등 몇 가지 숙제가 있었지만 거의 다 신속히 처리했다. 국회 수소경제포럼을 민관 소통 채널로 만들어 정책 역량 강화와 입법에 속도를 내도록 뒷받침하겠다.
◇수소 생산은 어떻게=수소는 차·비행기·선박, 가정과 산업의 발전용 등으로 활용할 수 있어 오는 2050년 탄소 중립의 해법으로 꼽힌다. 현재는 천연가스와 석탄을 고온·고압에서 수증기와 반응시켜 만든 추출수소가 절반이 넘는데 저렴하고 대량생산이 가능하나 이산화탄소가 대거 발생한다. 우리는 천연가스를 활용하는데 석탄보다는 낫지만 적지 않은 이산화탄소 발생을 감수해야 한다. 석유화학·제철 공장의 수소 혼합 가스에서 수소를 분리하는 부생수소는 저렴하지만 대부분 다른 공정의 원료로 투입되고 원천이 화석연료라는 한계가 있다. 물을 전기분해해 수소를 만드는 수전해 방식이 궁극적 해법이나 재생에너지나 차세대 원전에서 나오는 전기를 쓰면 온실가스가 배출되지 않지만 아직은 경제성이 떨어진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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