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 생산품이 전략물자인지 모른 채 해외에 수출했다가 재판에 넘겨지는 기업들이 줄을 잇고 있다. 무기나 이를 제조하는 데 쓰이는 물품이라는 일반 인식과 달리 실제 전략물자에는 의료 장비, 소프트웨어 등까지 폭넓게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전략물자 범위가 넓은 데다 심사 과정도 복잡해 수출을 앞두고 있는 기업들의 주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대외무역법 및 시행령에 따르면 국제평화, 안전 유지와 국가안보를 위해 수출 허가 등 제한이 필요한 물품은 전략물자로 명시하고 있다. 특히 전략물자가 수출돼 테러 지원국 또는 테러 조직으로 흘러들어가거나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수출허가제도를 운영 중이다. 허가 없이 수출할 경우에는 최고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수출 금액의 최고 5배까지 벌금이 부과된다. 또 최장 3년간 전략물자 수출입이 금지되는 행정 처분을 받을 수 있다.
문제는 무기 제조 등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보이는 물품이 포함되는 등 4대 수출 통제 체제에서 정한 전략물자의 범위가 넓다는 점이다. 특히 대기업과 달리 중소기업의 경우 전략물자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어 자칫 재판에 넘겨져 처벌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난해 2월 대외무역법 위반 혐의로 법원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서울의 한 중소기업 A사가 대표적인 사례다. A사에 적용된 혐의는 치과용 임플란트나 보철 재료를 만드는 밀링머신 11대(시가 4억 7,493만 원 상당)를 수출하는 등 대외무역법을 위반했다는 것이었다. 당시 A사는 “치과용 임플란트나 보철 재료를 만드는 장치가 전략물자에 해당될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고 치과 병원과 전시 목적으로만 수출했다”고 항변했으나 재판부는 “수출한 전략물자의 규모가 작지 않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처럼 무지(無知)로 인해 처벌받는 기업을 막고자 전략물자관리원은 ‘전문판정시스템’과 ‘온라인 자가판정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하지만 자가 판정 과정에서 기업이 실수를 해 재판에 넘겨지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로 밸브 수출 업체인 B사는 자가판정시스템을 이용했으나 진단 과정에서 착오가 발생하면서 재판에 넘겨지는 처지에 놓였다. 전략물자가 아니라고 판단해 90개(시가 5,822만 원 상당)를 수출했다가 대외무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다만 재판부는 B사가 전략물자를 허가 없이 수출한 점은 인정하면서도 고의성이 없었다고 판단하면서 선고유예 처분을 내렸다.
전략물자의 범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탓에 대부분 기업이 재판에서 ‘몰랐다’는 취지의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판부도 자연스레 전략물자의 개념과 내용 및 범위를 이해하기 쉽지 않다고 판시하면서 의도적으로 수출 허가 절차를 회피했는지에 집중해 사건을 심리하고 있다. 수사 당국의 한 관계자는 “적발되는 기업들의 90%는 규정을 인식하지 못한 상태”라며 “탄소섬유부터 카메라 렌즈, 소프트웨어 등 무기가 직접적으로 연상되지 않더라도 규제 대상이 될 수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한민구 기자 1min9@sedaily.com, 구아모 기자 amo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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