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에너지만 놓고 보면 사실상 섬나라입니다.”
최근 기자와 만난 한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우리나라의 신재생에너지 정책이 미국이나 유럽 방식을 그대로 따라해서는 안 된다며 이같이 지적했습니다.
실제 유럽연합(EU) 소속 국가들은 서로 간 전력망이 연계돼 풍력이나 태양력으로 생산한 전력을 어느 정도 나눠 쓸 수 있습니다. 특히 유럽은 전 세계 천연가스 생산량의 17%를 차지하는 러시아와 파이프라인이 연결돼 기체 상태의 천연가스를 직접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셰일가스’로 에너지 독립국이 된 미국은 2년 전 ‘석유 순수출국’이 된 데 이어 전 세계 천연가스 생산량에서 차지하는 비중(23.1%, 2019년 기준)이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다. 미국이나 EU는 신재생에너지 보급을 확대하더라도 전력망 안정성에는 큰 문제가 없는 구조인 셈입니다.
반면 한국은 다릅니다. 우리나라는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부터 러시아에서 생산된 천연가스를 공급받기 위한 파이프라인 건설 계획을 추진했지만 ‘남북 관계’라는 변수 때문에 17년 넘게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발전 용량의 32.3%를 차지하는 액화천연가스(LNG)는 천연가스를 액화시킨 뒤 이를 LNG운반선으로 들여와 다시 기화시킨 후 발전하는 방식 입니다. 이 때문에 파이프라인으로 공급받는 천연가스에 비해 발전단가가 4~5배가량 높습니다. 이외에도 우리나라는 발전용 석탄을 99% 수입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또 발전 단가가 여타 화석연료 대비 절반 수준인 원자력발전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전체 발전설비 용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지난 2020년 18.2%에서 오는 2034년 10.1%로 줄인다는 방침입니다.
반면 정부는 신재생에너지의 설비 용량은 같은 기간 15.8%에서 40.3%로 빠르게 늘린다는 계획입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문제 때문에 우리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보급 정책에 대한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재생에너지는 발전 변동성이 큰데, 한국은 에너지 섬나라이기 때문에 재생에너지 발전량에 따라 이를 타 국가에 내보내거나 들여오는 게 불가능하다”며 “LNG 등 여타 화석연료의 높은 가격을 감안하면 원전 비중 확대를 통해 신재생에너지의 낮은 안정성 문제에 대응해야 한다”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 같은 신재생에너지 과속 정책의 문제점은 현재 전력 과잉생산 등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태양광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관련 통계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신규 설치된 태양광 규모(4,126MW)는 원자력발전소 4개(발전소 1개당 1,000MW) 규모를 뛰어넘었습니다. 지난 2018년 2,367MW 수준이었던 태양광 신규 설비 용량은 2019년 3,789MW로 늘어나는 등 가파른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현재 태양광 설비 확대는 전기 수요 증가나 에너지 전환이 아닌 태양광 사업자들에게 돈이 됐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전기 판매 수익 외에 ‘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C)’ 판매로 추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구조를 만들며 너도나도 할 것 없이 태양광 사업에 뛰어들고 있는 상황입니다. 500MW 이상의 발전설비를 갖춘 대부분의 대형 발전사들은 민간 태양광 사업자 등이 현물시장에 내놓은 REC를 사들이는 방식으로 ‘신재생에너지 의무발전비율(RPS)’을 맞춥니다. 이에 따라 발전사들이 지급하는 RPS 의무이행비용 정산금은 2016년 1조 1,811억 원에서 2019년 2조 2,422억 원으로 3년 만에 두 배가량 껑충 뛰었습니다. 특히 지난해 REC 가격이 4만 원대로 2년 사이 반 토막이 났음에도 민간의 태양광 사업 진출이 잇따르며 RPS 정산금은 2조 31억원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태양광발전이 수요와 무관하게 보조금으로 과잉생산 단계로 접어들었음에도 정부는 속도 조절은커녕 민간 태양광 사업자들의 비용 보전을 위해 RPS 상한을 기존 10%에서 25% 늘리기로 하며 REC 가격 반등을 꾀하고 있습니다. RPS 정산금 증가는 전기 요금 인상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태양광 사업자의 비용 보전을 위한 보조금을 전 국민이 분담하고 있다는 볼멘소리도 나옵니다. 무엇보다 태양광 같은 신재생에너지의 정격 용량의 경우 지난해 전체 전력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5.8%인 반면 전기 사용량이 많을 때의 발전량을 뜻하는 ‘피크기여도’는 3.3%에 불과해 전력 시스템의 안정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됩니다. 태양광은 기온이 25도 이상인 여름이나 일조량 및 기온이 낮은 겨울에는 발전 효율이 크게 떨어집니다. 이 때문에 지난해 폭염과 올해 초 혹한기 당시 신재생에너지의 피크기여도는 1%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정부가 신재생 전환 정책의 밑그림을 새로 짜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 이유입니다.
/세종=양철민 기자 chop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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