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4·7 재보궐선거 이후 ‘민생 입법’을 강조해왔지만 각 당의 당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중소·벤처기업 지원 등을 위한 민생 법안이 뒷전으로 밀려났다. 지난해 기업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의 ‘기업 규제 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이 통과된 후 정치권 안팎에서 기업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여야는 새 지도부 구성에만 골몰한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국회에 계류된 각종 민생 법안의 4월 국회 통과에 빨간불이 켜졌다.
25일 정치권에 따르면 중소 규모 사업체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자는 취지의 법안들은 이달 중 국회 내 소관 상임위원회를 통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복수의결권 도입을 골자로 하는 벤처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다루고 있는 해당 법안은 벤처기업 창업주가 기업 사냥꾼의 표적이 되는 것을 막는 내용을 담았다. 복수의결권이 실제 보유한 지분율보다 더 많은 의결권을 최대주주에게 주는 제도인 만큼 창업주의 경영권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미국·일본·영국·독일 등지에서 시행 중이지만 1주당 하나의 의결권만 허용하는 우리나라에는 도입되지 않았다.
벤처기업법 개정안은 앞서 중소벤처기업부가 지난해 12월 제출한 것으로 △존속 기간 10년 △상장 3년 후 보통주 전환 △창업주 지분이 30% 이하로 떨어질 경우에만 발행 등 단서 조항을 포함한다. 더불어민주당은 복수의결권 도입에는 전반적으로 찬성하면서도 정부안을 그대로 통과시키자는 의견과 단서 조항 일부를 완화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갈리는 분위기다. 국민의힘 산자위 위원들도 같은 이유로 당론 합의에 이르지 못한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정의당은 복수의결권이 재벌 세습에 악용될 우려가 있다며 강하게 반발해 의견 대립이 이어지고 있다. 해당 법안이 반년이 다 되도록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이유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분야인 핀테크 산업 육성을 위한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도 지난해 11월 발의됐지만 여전히 정무위원회에 머물러 있다. 전금법 개정안은 종합지급결제사업자가 금융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하는 라이선스 도입이 핵심이다. 종지업자가 청산 중인 내부 거래를 금융결제원이 처리하도록 의무화한다는 내용도 담았다. 이에 야당은 처리 범위를 둘러싼 금결원과 한국은행의 갈등 등을 우려해 법안 보완을 주장하고 있다.
이 밖에 엔지니어링 조합과 에너지 특화 기업, 청년 창업 기업에 혜택을 주는 법안들도 국회에 잠들어 있다. 해당 법안들은 “일부 조합에만 특혜를 준다” “에너지 분야 대기업도 지원하면 중소기업 혜택이 줄어든다” “창업 기업 공공 기관 우선 구매 제도가 이미 존재한다” 등의 이유로 여야 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고 있다.
일각에서는 여야가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권 경쟁에 화력을 집중하느라 민생 법안을 제대로 검토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각 당의 새 지도부 구성이 마무리되기 전에는 해당 법안들의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민주당은 다음달 2일, 국민의힘은 다음달 말에서 6월 초께로 전당대회가 예정돼 있다. 한 국회 관계자는 “국회의원들이 당권 싸움에 힘을 다 쓰는 바람에 정작 본업인 법안 검토에는 소홀해진 것 같다”며 해당 법안들을 두고 “5월 국회로 넘어갈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이희조 기자 lov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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