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준이 17년 만에 선출직에 당선돼 대한민국 제2의 도시 부산광역시의 지도자로 변신했다.
박 당선인은 부산시장이 되기까지 27년간 보수정치의 길을 걸어왔다. 그를 지도자 반열에 올린 동력은 대중적 인기다. 그는 TV토론에서 합리적 의견을 온화한 말투로 제시하며 ‘따뜻한 보수’를 자처했고 곧 유명세를 탔다. 과거 정부의 실정과 사례, 대안을 함축적으로 제시하는 화법은 그의 오랜 정치경력을 담은 경험에서 나왔다.
박 당선인은 대학교수와 시민단체 활동을 하다가 지난 1994년 김영삼 대통령이 3당 합당으로 만든 민주자유당에 입당해 대통령정책자문위원으로 정치무대에 데뷔했다. 이는 보수진영의 유력 대권주자인 홍준표 무소속 의원(1996년)과 유승민 전 의원(1998년)보다 빠른 정계진출이다.
그는 정계에 나선지 10년 후인 2004년에야 중앙정치에서 이름을 알렸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부산 수영구에 출마해 당선되며 국회에 입성했다. ‘친(親)이명박계’라는 꼬리표도 이 때 붙었다. 국회에서 그는 친이계 소장파들과 함께 ‘수요모임’을 만들어 활동했다. 2007년 대선에는 당시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이명박 후보를 도와 대변인으로 활동했고,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획조정분과위원을 맡으며 이른바 ‘MB’맨으로 부상했다. 핵심인사로서 이명박 정부에서 정무수석과 홍보기획관, 사회특보 등 요직을 두루 맡았다. 박 당선인은 이명박 정부의 중도실용과 친서민정책의 근간을 짜는데도 큰 역할을 했다.
이명박 정부 이후에는 정치권에서 멀어졌지만, 보수논객으로 인지도는 오히려 높아졌다. 청와대와 국회를 오가며 쌓은 정치경력이 TV에서 빛을 발한 것. 특히 2017년부터 2년간 출연한 시사프로그램 ‘썰전’은 그가 다시 중앙정치로 복귀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그는 이후 2020년 4월 총선에서 미래통합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으며 정치권으로 돌아왔다. 박 위원장은 당시 본지와 인터뷰에서 “유능한 정부의 역할은 세 가지다. 튼튼한 경비원, 따뜻한 보호자, 진취적인 상인”이라며 중도실용을 내세웠다.
선거 과정에서 그가 쌓은 높은 대중적 인지도와 중도실용 철학은 큰 무기이자 거대한 방패로 작용했다. 선거 과정에서 쏟아진 수많은 네거티브(비방전)도 그의 높은 대중적 인지도 앞에서는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부산지역의 국민의힘 소속 의원은 “부산 선거는 박형준의 ‘원맨쇼’라고 봐야 한다”며 “지도부는 지난 총선을 참패로 이끈 그의 출마를 반기지 않았지만 높은 지지율이 모든 결점을 상쇄했다”고 평가했다.
/구경우 기자 bluesqua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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