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표적인 자동차부품 공장인 한국GM의 충남 보령 공장이 휴업에 돌입한다. 반도체 부족 쇼크로 완성차 업체들의 공장이 멈춰서면서 부품 업계까지 위기가 본격화하고 있는 것이다. 반도체 부족 현상이 장기화해 국내 차 업계 맏형인 현대차마저 공장 문을 닫으면 현대차·기아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부품사들도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7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GM 보령 공장은 이달 총 9일만 공장을 가동하기로 했다. 지난달 6일간 휴업에 뒤이어 또다시 공장 문을 닫는 것이다. 보령 공장이 장기 휴업에 돌입하는 것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확산했던 지난해 5월 이후 처음이다. 1996년 옛 대우중공업이 디젤변속기 생산을 위해 설립한 보령공장은 현재 자동차용 자동변속기(트랜스미션)를 만들고 있다. 변속기는 주행 조건에 맞게 엔진의 힘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자동차의 동력전달계통 부품이다. 크루즈와 말리부, 트랙스 등에 장착되는 변속기가 이곳에서 생산된다.
이번 휴업으로 가동률이 떨어지면 대규모 생산손실이 불가피하다. 회사 내부 자료에 따르면, 이달 생산량은 기존 3만8,000대에서 60% 감소한 1만5,000대로 추산된다.
보령 공장 휴업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주요 수출 지역인 브라질, 우즈베키스탄, 인도네시아 등의 완성차 조립 라인이 반도체 수급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주문량을 크게 줄였다. 지난 1월 반도체 부족 사태가 시작되자 GM은 2월부터 글로벌 생산을 줄이며 대응하고 있다. 한국GM의 부평 2공장이 최근 생산량을 50% 가량 줄인 것도 이같은 조치에 따른 것이다. 시장조사기관 IHS마킷은 올해 1분기 전 세계 차량 생산이 67만2,000대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기에 트랜스미션 제작에 필요한 전자제어장치(ECU) 등 반도체 공급이 부족했던 점도 휴업에 한몫했다.
한국GM의 한 관계자는 “수만개의 부품을 조립해 만드는 자동차의 특성상 작은 부품 하나만 부족해도 라인이 설 수밖에 없다”며 “본사에서 글로벌 차원으로 부품 수급 상황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사태가 단기간에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전장 부품 업체 53곳 중 72%는 최근 협회 설문조사에서 “수급 차질이 연말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부품사 절반(48%)은 “반도체 문제로 이미 생산을 20~50% 줄였다”고 답했다. 또 응답 업체의 49.1%는 완성차 업체의 생산 차질이 부품 업체의 운영자금 문제를 심화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김주홍 자동차산업협회 상무는 “자동차 전동화로 차량용 반도체 수요가 급증해 부족 사태가 단기간 내 해소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국내 완성차 업계는 그간 재고 관리를 해온 덕분에 해외 업체들에 비해 수급 상황이 상대적으로 양호한 편이었지만, 이달부터는 현대차와 기아도 본격적으로 감산에 들어가면서 4월 위기가 현실화하고 있다. 그랜저와 쏘나타를 생산하는 현대차 아산공장이 휴업을 검토하고 있고, 아이오닉 5와 코나를 생산하는 울산1공장은 이달 7일부터 14일까지 가동 중단을 결정했다. 쌍용차도 8일~16일(주말 제외) 7일간 평택공장 자동차 생산을 중단한다고 이날 공시했다. 기아의 경차 모닝과 레이를 위탁생산하는 동희오토는 지난 1~3월에 총 15일 가량 휴업을 한 데 이어 이달에는 잔업과 특근을 하지 않기로 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현대차·기아의 생산이 멈추면 국내 부품사 대부분의 운영자금 애로가 커질 것”이라며 “플랜 A는 물론, 플랜B까지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한동희 기자 dwis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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