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호 회장님,
얼마 전 경영 일선에서 은퇴하신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하더라도 이리도 홀연히 떠나실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대한민국 경제를 위해 한시도 쉼 없이 달려오신 회장님을 이제는 더 먼 곳으로 보내드려야 한다니 황망하고 깊은 슬픔을 가눌 길 없습니다.
회장님께선 경총의 회장단으로서 가장 오래 자리를 지켜오신 경제계의 대들보셨고, 누구보다 나라의 경제 발전에 노력을 쏟으셨던 큰 어른이셨습니다. 그동안 몸소 보여주셨던 기업인으로서의 삶은 제 경영 인생에도 큰 귀감이 되었습니다.
회장님은 저에게는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변함없는 산과 같은 분이셨습니다.
이제 다시는 회장님의 인자하신 모습과 따뜻한 말 한마디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이 야속하기만 합니다.
회장님께서 걸어오셨던 56년간의 경영자로서의 삶은 ‘우보만리(牛步萬里)’였습니다. 먹을거리가 충분치 않던 1970년대 값싸고 맛있으면서 영양가 높은 식품으로 국민들의 먹는 문제 해결에 기여하고 싶다는 사명 하나로 사업을 시작하셨습니다. ‘밀가루 반죽과 씨름하고 한여름 가마솥 옆에서 비지땀을 흘렸다’는 회장님의 말씀처럼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정진하셨습니다.
그 결과 1965년 35세 청년이 단돈 500만 원의 자본금을 들고 영등포구에서 시작한 ‘농심(당시 롯데공업)’은 지금 매출 2조 원이 넘는 국내 대표 식품 기업으로, 세계 라면 시장 5위를 차지하는 글로벌 식품 기업으로 성장하였습니다.
회장님께서는 그 누구보다 기업의 원칙과 본질을 잘 알고 계신 분이셨습니다. 회장님께서 항상 말씀하셨던 ‘이농심행 무불성사(以農心行 無不成事)’는 아직까지도 후배 기업인들에게 기업의 정도경영과 사회적 책임을 일깨워주며 큰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사업이 궤도에 오른 뒤에도 회장님께서는 과감한 투자와 연구를 거듭하시며 글로벌 시장 개척이라는 더 먼 미래를 내다보셨습니다.
회장님께서는 ‘스스로 서야 멀리 갈 수 있다’ 하셨습니다. 당연하지만 지키기 쉽지 않은 원칙을 가지고 그토록 주야(晝夜)를 가리지 않고 쉼 없이 독자적인 기술과 제품 개발을 위해 온 힘을 쏟아부으셨습니다.
56년의 경영 인생 동안 자신을 쉼 없이 내던지며 뚝심으로 매진하셨던 회장님의 도전이 지금 글로벌 시장의 K푸드 열풍을 부른 초석이 되었음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농심의 역사가 곧 식품 산업의 발전사이다’라는 회장님의 말씀처럼 회장님이 걸어오신 길은 우리 한국 경제의 역사입니다.
이제 모든 걱정과 짐들은 후배 경영인들에게 맡겨놓으시고 부디 편안하게 쉬십시오. 신춘호 회장님의 영전에 가슴 깊은 존경을 담아 추도사를 바칩니다.
/김능현 기자 nhkimchn@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