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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시동·日 액셀·中 확장…'삼각 파고' 앞에 놓인 K배터리

[글로벌 제조업 지각변동]▶배터리-<1> 흔들리는 초격차

☞유럽:新 밸류체인 구축 ☞日:공급처 다변화 ☞中:유럽 영향력 확대

유럽 전폭지원 '노스볼트' 2023년부터 폭스바겐에 공급

日 '민관협의회'로 경쟁력 업…中은 글로벌車 침투 가속

도요타·퀀텀 등 '꿈의 배터리' 전고체 개발 경쟁도 가열





국내 배터리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이노베이션)가 대형 악재와 호재가 동시에 쏟아지는 혼돈의 시기를 겪고 있다. 세계 최대 완성차 업체인 폭스바겐이 2030년까지 전기차 모델 80%에 ‘각형’ 배터리를 채택하겠다고 선언하면서 ‘파우치형’ 진영인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을 충격에 빠뜨렸다. 유럽의 배터리 밸류체인 구축 선언과 중국의 견제는 국내 배터리 업계를 바짝 긴장하게 만들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친환경 자동차 시장 급성장은 더할 나위 없는 사업 확장의 기회다. 미국이 핵심 산업의 중국 의존도를 낮추는 정책을 추진하는 것 역시 국내 업계가 미국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기회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최근 배터리를 비롯한 4개 품목의 공급망을 점검하라고 지시했다. 중국을 겨냥한 조치다. 업계로서는 G2(미국·중국) 패권 경쟁 판세까지 따지며 사업해야 하는 것이다.

한·중·일 아시아 3국에 쏠린 전기차 배터리 패권을 가져오려는 유럽의 움직임은 국내 배터리 3사에 중장기적인 위협 요인이다. 이는 단순히 한국 업체들이 공급하던 물량을 다른 데서 조달한다는 차원을 넘는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유럽 내 배터리 부품·소재 밸류체인을 구축하려는 정책과 함께 글로벌 표준을 선점하려는 노력을 펼치고 있다”면서 “이는 장기적으로 전통의 제조 강국인 유럽이 배터리 산업을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 상황에서 가장 주목받는 곳은 스웨덴 업체인 노스볼트다. 폭스바겐이 지분 20%를 보유한 노스볼트는 오는 2023년부터 폭스바겐에 배터리를 본격적으로 공급한다. 노스볼트는 최근 폭스바겐으로부터 140억 달러(한화 15조원) 규모의 배터리 공급 계약을 수주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오는 2030년까지 공장 6곳을 지어 배터리 생산 능력 240기가와트시(GWh)를 확보하겠다는 폭스바겐은 현실적으로 노스볼트와의 협력을 공고히 할 수밖에 없다. 240GWh는 LG에너지솔루션의 현재 글로벌 전체 캐파 120GWh의 두 배 수준이다. 노스볼트는 유럽 국가와 현지 완성차 업체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

세계 1위 전기차 업체인 테슬라의 배터리 메인 공급사인 일본 파나소닉의 움직임도 예사롭지 않다. 쓰가 가즈히로 파나소닉 사장은 최근 파이낸셜타임즈(FT)와의 인터뷰에서 “테슬라에 의존하는 전략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며 “테슬라 외 다른 제조사에 배터리 공급 기회를 노려야 한다”고 말했다. 파나소닉은 이미 폭스바겐에도 배터리를 공급하고 도요타와도 협력 관계에 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신규 거래선을 확보하는 데 주력하겠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테슬라는 배터리 원가를 파격적으로 낮추고, 궁극적으로는 내재화까지 하겠다는 전략이어서 파나소닉으로서는 공급처 다변화가 생존의 길이기도 하다.



아사히카세이·도레이 등 배터리 핵심 소재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일본도 민관 협력 차원에서도 배터리 시장 대응에 나서고 있다. 일본 배터리 관련 기업 30여곳은 일명 ‘전지공급망협의회’를 설립할 것으로 알려졌다. 도요타와 파나소닉 등 완성차와 배터리 양대 업체는 물론 부품·소재 업체들이 참여하는 기구다. 요미우리신문은 “일본이 배터리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위기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의 견제도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미·중 갈등으로 미국 시장 진입이 사실상 막힌 중국으로서는 내수에서 유럽 시장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중국 업체들은 세계 최대 전기차 무대인 자국 시장을 ‘테스트 베드’ 삼아 기술력을 빠르게 축적하고 있다. 최근에는 무대를 유럽으로 넓혀가고 있다. 폭스바겐이 각형 배터리 채택을 선언한 것도 노스볼트 뿐 아니라 중국 CATL과의 협력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CATL은 각형 배터리를 주력으로 한다. 실제 폭스바겐은 지난 15일(현지시간) ‘파워 데이’ 행사에서 CATL 로고를 화면에 띄우기도 했다.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전용 플랫폼인 ‘E-GMP’에 적용할 배터리 물량의 3분의 2 가량을 수주한 곳도 CATL이다.

차세대 배터리 경쟁도 만만치 않다. ‘꿈의 배터리’로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 경쟁이 대표적이다. 전고체 배터리는 말 그대로 ‘전해질이 고체’인 배터리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리튬 이온(Li+)이 양극과 음극 사이를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물질로, 액체 상태로 돼 있다. 하지만 전고체 배터리는 액체 상태의 전해액이 아니라 고체의 전해질로 돼 있다. 발열이나 화재 위험이 상대적으로 작아 유리하다는 장점이 있다. 주행거리와 직결되는 에너지밀도도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보다 2배 이상 높일 수 있다. 한 번 충전으로 800㎞ 주행이 가능하다. 일본 조사기관 후지경제는 차세대 전고체 전지 시장 규모가 2035년 28조원으로 예상하고 있다.

도요타는 전 세계 전고체 배터리 관련 특허의 40% 가량인 1,000개 이상의 특허를 보유해 해당 분야에서 가장 앞선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에서는 스타트업 퀀텀스케이프가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하고 있다. 빌 게이츠와 폭스바겐이 투자했다. 삼성과 현대차, BMW, 포드 등이 투자한 솔리드파워도 있다. 이 회사는 최근 전고체 배터리 개발 일정을 공개했는데, 2022년 테스트를 시작해 2020년 중반을 본격적인 납품 목표 시점으로 잡고 있다.

/한재영 기자 jyha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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