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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과학기술 뉴딜과 대학 R&D 펀드

대학·출연연, SCI 망국병 세태

창업·기술이전 등 사업화 부진

성공해도 교수 등이 과실 독식

창업시 일정지분 기부 의무화

국민에게 투자문호 개방해야

고광본 선임기자




서울의 한 대학 공대 교수인 A 씨는 창업에 도전했으나 배우자를 대표로 내세웠다. 학교 행정 처리가 복잡한 데다 대학에 지분을 기부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만약 이 회사를 통해 정부와 기업에서 연구개발(R&D) 과제를 수주하면 학교에 내야 하는 간접비(15~30%)를 내지 않을 수도 있다. 서울의 한 대학 산학협력단장은 “이런 꼼수는 예외적인 도덕적 해이일 수도 있으나 대학 창업 생태계가 잘 작동되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실제 서울의 한 대학 바이오 분야 교수는 창업 후 기업 가치가 조 단위를 넘자 정년도 채우지 않고 사표를 냈다. 오랫동안 대학에서 창업자를 겸직하며 양쪽에서 월급을 받고 브랜드·네트워크·실험실·연구원 등을 활용했지만 과실을 독식한 것이다. 서울대의 경우 지난 2005년 박희재 기계공학부 교수가 코스닥 상장 뒤 당시 주식 가치로 80억 원을 기부한 것이 창업 교수 중 최고 기부액이다. 현재 2,100명 이상의 교수 중 연간 30여 명이 창업하는데 서울대기술지주회사의 자회사로 편입돼 20% 지분을 주는 경우는 연 1~2명에 불과하다. 법이 바뀌어 이 비율이 오는 6월부터 10%로 낮아진다고 하지만 자회사 숫자가 급증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미국처럼 교원이나 학생이 창업에 크게 성공하더라도 거액을 기부하는 문화가 미흡하다. 성균관대와 한양대가 창업 교원에게 자회사 편입과 무관하게 처음 창업할 때 각각 7%, 10% 기부(투자 유치 과정에서 지분율 감소)를 의무화한 것도 이 때문이나 대학 전체로 보면 일반적이지 않다. 출연연의 경우 외부 기업에 기술이전해 만든 연구소 기업에는 지분 참여를 하나 연구원이 개별적으로 창업한 기업에는 지분이 아예 없다. 연구자들은 “과제 수주 시 간접비를 내고 대학이나 출연연은 기술이전 시 로열티를 받지 않느냐”고 항변하지만 상생 마인드가 필요하다.

물론 우리 대학이 ‘SCI(미국 클래리베이트가 인정한 국제 학술지) 망국병’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논문 위주 풍토에서 창업 활동을 활발히 편다면 그 자체로 높이 평가할 만하다. 여전히 추격형 연구 패턴이 이어지고 정부 R&D 과제의 실용화율도 2%가 채 안 되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국내 대학과 출연연이 기술이전료로 버는 돈에서 특허 유지료와 성과비(수입의 50~70%)를 제외하면 오히려 마이너스인 게 단적인 예다.



항암제 개발 바이오 벤처를 하는 윤채옥 한양대 교수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의 밥 랭거 교수가 대학원생들과 함께 45개 정도 창업했는데 국내 대학의 창업 문화와 대조적”이라고 비교했다. 박희재 교수는 “100여 명의 석·박사 제자 중 베트남 출신 박사가 귀국해 창업에 성공했으나 국내 제자들은 도전 사례가 없다”고 아쉬워했다.

따라서 대학이나 출연연의 임용·승진과 정부의 R&D 과제 평가에서 창업 등 기술 사업화를 적극 반영할 필요가 있다. 과감히 선도 연구로 전환하고 실패를 용인하는 R&D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특히 대학과 출연연의 창업자에게 7%가량의 일정 지분 기부를 의무화함으로써 상생을 꾀해야 한다. 대학과 출연연에 대한 기부 시 세제 혜택도 늘려야 한다. 출연연은 그동안 기부 자체가 금지돼 있다가 이제야 풀리는 추세다. 여기에 국민에게 투자의 문호를 개방해 대학과 출연연의 R&D 펀드를 조성하면 금상첨화다. 이후 매각이나 코스닥 상장은 물론 미국 나스닥에도 다수 상장시켜 이익금을 돌려주며 10~20% 기부를 받으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이는 서울대·KAIST 등 우수 대학원생들이 창업 기피는 물론 취업도 국내 기업은 상명하복식에 단기 성과를 강요한다며 실리콘밸리를 선호하는 현 세태를 확 바꿔놓을 수 있다. 하지만 대학과 출연연에만 맡겨서는 답이 없다. 당정청이 법과 제도로 풀어줘야 한다. 이게 바로 과학기술 뉴딜 아닌가.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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