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가게는 수기 명부만 쓰고 있는데 개인안심번호는 처음 들어보네요. 손님들이 갑자기 물어보면 저도 당황스러울 것 같네요.”
방역 당국이 개인 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 도입한 ‘개인안심번호’가 처음 시행된 19일 서울경제가 종각역과 강남역·건대입구역·탑골공원 등 서울 시내 카페와 식당 등 다중 이용 시설 30곳을 둘러본 결과 해당 제도를 알고 있는 곳은 단 한 곳에 불과했다. 업주들은 물론 개인안심번호의 수혜를 누려야 할 시민들도 정작 제도 시행 자체를 몰랐고 안심번호 도입의 주 수요층이 돼야 할 노년층은 사용할 줄 모른다는 반응이었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와 중앙방역대책본부는 다중 이용 시설 방문 시 휴대폰 번호를 기입하는 수기 명부를 통해 개인 정보가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날 정오부터 개인안심번호를 전면 시행했다. 개인안심번호는 휴대폰 번호를 ‘12가34나’처럼 숫자 네 자리와 한글 두 자리 등 무작위로 변환한 총 여섯 자리의 문자로 해당 번호로는 직접 연락을 취할 수 없다. 방역 당국만이 개인안심번호를 휴대폰 번호로 변환할 수 있다. 개인안심번호를 통해 개인 정보 유출과 오·남용을 막을 수 있는 동시에 개인 정보 유출 우려로 연락처를 허위로 기재하는 일이 줄어들 것으로 방역 당국은 기대하고 있다. 실제 지난해 이태원 클럽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했을 당시 출입 명부를 작성했던 방문자 중 41%만이 통화가 가능해 수기 명부의 허점이 드러나기도 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제도 시행 첫날 현장에서는 당국의 홍보 부족으로 개인안심번호를 사용하는 시민들을 찾아볼 수 없었다. 서울 광진구 건대입구역 인근에서 만난 정진웅(64) 씨는 “사실 QR코드도 조작하기 어려워 지인들이 도와줄 때만 가끔 쓰는 중”이라며 “안심번호를 발급받거나 외우고 다니는 것도 귀찮아서 앞으로도 계속 휴대폰 번호를 적을 것 같다”고 말했다. 경기도 수원에 거주하는 60대 김 모 씨도 “개인안심번호는 처음 들어본다”며 “사용법을 알아도 우리 또래는 그냥 해오던 것처럼 이름하고 전화번호 적고 들어가는 게 더 편할 것”이라고 전했다.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에서 만난 문홍복(81) 씨도 “차라리 우리 같은 노인들에게는 동사무소에서 개인안심번호를 종이에 써서 나눠주면 쓸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개인안심번호 도입은 개인 정보 보호라는 측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실생활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당국의 적극적인 정책 홍보와 함께 디지털 기기 조작에 익숙지 않은 노년층도 이용할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헌영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개인안심번호제도가 현장에 빨리 뿌리내리도록 하려면 정부와 현장 사업자들이 다양한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며 “특히 디지털 취약 계층도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돕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측은 “디지털 취약 계층도 제도를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디지털 교육을 강화할 방침”이라며 “제도가 자리 잡을 수 있게끔 꾸준한 홍보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심기문 기자 door@sedaily.com, 김남균 기자 south@sedaily.com, 이덕연 기자 gravit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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