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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마인드' 무장한 총수들 "어제의 적, 오늘의 친구로"

■포스트 코로나, 새 판 짜는 대기업 <1>경쟁사와도 합종연횡

현대차·삼성 10년만에 전기차 협력

LG전자·加마그나 전기차 부품 합작

신세계, 네이버와 新유통연대 모색

미래 모빌리티·로봇·수소분야 등

새 먹거리 발굴 위해 손 맞잡아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지난해 이재용(삼성)·최태원(SK)·구광모(LG)·신동빈(롯데) 등 5대 그룹 총수를 차례로 만났다. 미래 모빌리티 사업 협력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다. 자동차의 정보기술(IT) 기기화 패러다임 속에서 핵심 기술을 보유한 기업과의 협업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기 때문이다.

합종연횡은 자동차 산업에 국한되지 않는다. 신세계는 네이버와 협력을 모색하고 있고 현대중공업은 통신 업체인 KT와 신사업 기회를 발굴하고 있다. 심지어 정유사인 GS칼텍스는 아모레퍼시픽과 협업을 한다. 산업계가 합종연횡을 통해 포스트 코로나 시대 주도권 확보를 위한 새판 짜기에 나선 것이다.

신사업 분야 새판 짜기

글로벌 컨설팅 업체인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최근 보고서에서 “자동차 산업은 내연기관에서 전기차로의 차량 설계 전환과 승차 공유 같은 소비자 행동 패턴 변화를 목격하고 있다”며 “앞으로 수년간 더 많은 변화가 발생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자동차 산업의 이러한 패러다임 변화는 완성차 업체 홀로 감당하기 어렵다. 전기차는 배터리, 자율주행차는 운전자의 눈과 두뇌·손발을 대신할 IT 부품들이 필요하다. 산업 생태계 정점에 군림했던 과거와 달리 생존을 위한 협업이 완성차 업체들의 숙제다.

현대차가 10여년 만에 삼성과 거래를 재개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현대차는 차세대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를 기반으로 만드는 첫 전기차인 아이오닉5에 삼성디스플레이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을 채택했다. 현대차와 삼성이 맺은 10여년 만의 납품 계약이다. 현대차는 LG에너지솔루션과의 인도네시아에 대한 전기차 배터리 생산 공동 투자 가능성도 제기된다. SK네트웍스와 전기차 충전 인프라 구축을 함께하고 LG전자와는 지난해 ‘아이오닉 콘셉트 캐빈’을 공개했다.

자동차뿐 아니라 유통 분야에서는 신세계가 빠르게 변화하는 소비 패턴에 대응하기 위해 네이버와 협업을 추진하고 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를 직접 찾아가 만났다. 현대중공업은 KT와 로봇 분야 공동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산업계의 한 관계자는 “수직 계열 체계에 머물러 자기 계열사만 찾다 보면 급변하는 산업 흐름을 따라갈 수 없다”며 “외부 기술을 수혈해 완성품의 퀄리티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원·하청 관계에서 전략적 협력으로

산업화 시기 창업 세대인 삼성 이병철, 현대 정주영, LG 구인회 3인방의 라이벌 의식은 대단했다. 삼성의 완성차 진출, 현대의 가전 산업 진출, LG의 반도체 진출은 서로의 심기를 건드렸다. 업종 구분이 명확했고 수직 계열화도 철저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들어서면서 이러한 사업 영역 구분은 무의미해지고 있다. 모든 산업이 데이터 기반 첨단 기술로 연결되고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도태되는 흐름이다. 이병태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는 “기존의 비즈니스가 디지털화되고 있기 때문에 각기 다른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는 업체들 간의 협력이 중요해졌다”고 설명했다. 중후장대 산업이 국내 빅테크 기업들과 손을 잡는 것은 이러한 배경에서다.

과거에도 기업 간 협력은 활발했다. 다만 부품·소재를 납품하고 공급받던 과거의 단순 원·하청 관계는 자본을 함께 투자해 공장을 돌리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진화했다. 배터리를 생산하는 삼성SDI는 하청 업체인 에코프로와 아예 배터리 핵심 소재(양극재) 합작 공장을 짓고 있다.

창업 3~4세로 세대교체가 이뤄진 국내 재계 분위기도 이런 움직임에 한몫하고 있다. 이들은 타 기업과의 협력과 연대에 거부감이 덜하다는 게 재계 평가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젊은 총수들은 글로벌 관점에서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 몸소 경험하고 있다”면서 “아버지 세대와 달리 다른 기업과 유대 관계를 맺는 데 거부감이 없다”고 말했다. 정은미 산업연구원 신성장산업연구본부장은 “국내 기업이라 하더라도 시각 자체가 글로벌 시장을 향하고 있기 때문에 국내에서의 경쟁은 무의미하다고 보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국경 초월해 맞손

합종연횡이 국내 기업 간으로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LG전자는 글로벌 3위 캐나다 자동차 부품 업체인 마그나 인터내셔널과 함께 1조 1,092억 원을 투자해 전기차에 들어가는 구동장치를 생산하는 합작 법인을 설립하기로 했다. 마그나는 애플의 전기차 사업 프로젝트인 ‘타이탄’에 참여한 바 있다. 애플 말고도 벤츠·BMW·재규어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과도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 2019년 말 미국 자율주행 업체 앱티브와 40억 달러(약 4조 5,000억 원) 규모의 조인트벤처(JV)를 설립한 것을 비롯해 미국 엔비디아(자율주행), 중국 바이두(자율주행), 영국 어반에어포트(UAM·도심항공모빌리티) 등 굴지의 기업들과 거미줄 같은 협력망을 구축하고 있다.

자동차뿐 아니라 미래 성장 산업에는 어김없이 협업이 등장한다. 한화에너지는 프랑스 오일 메이저 토탈과 미국 내 신재생에너지 시장 공략을 위해 2조 원 규모의 태양광발전 합작사를 설립하기로 했다. SK그룹은 미국 수소 업체인 플러그파워에 1조 6,000억 원을 투자해 최대 주주가 됐고 이 업체는 프랑스 르노그룹과 수소차 생산 합작 법인을 세우기로 했다.

/한재영 기자 jyhan@sedaily.com, 박한신 기자 hspark@sedaily.com, 이수민 기자 noenem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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