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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중개 없이도 자금 이체 가능…CBDC로 금융·상거래 빅뱅 예고

[CBDC 도입 속도 내는 한은]

비대면 거래 급격히 늘어 작년 상반기 전자지급결제 15.3%↑

보수적 태도 보여온 한은도 필요성 인정…法 토대 구축 서둘러

정보보호 등 다양한 실험 뒤 이르면 연내 종합평가 내놓을 듯





정보통신기술(ICT)의 발달로 현금 사용량이 갈수록 줄어드는 가운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 거래가 늘면서 현금 없는 사회는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다. 한국은행은 국내 현금 이용 비중이 아직은 상당해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 도입이 이르다고 보면서도 코로나19로 지급 결제 환경이 급격히 바뀔 수 있어 언제든 발행이 가능한 법적 환경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은이 8일 공개한 ‘CBDC 관련 법적 이슈 및 법령 제·개정 방향’에 관한 외부 연구 용역 결과는 향후 금융업뿐 아니라 상거래 및 산업 전반에 일대 변혁을 시사하고 있다. 용역을 담당한 연구진은 현금과 교환이 가능한 CBDC를 한은이 직접 개입해 이용자들에게 발행할 수 있고 CBDC 보유자는 은행 등 금융기관의 중개 없이 자금 이체가 가능해 CBDC를 어떻게 설계할지에 따라 금융 산업과 상거래, 특히 전자 상거래에 엄청난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예상했다.

한은은 CBDC에 대한 법률적 검토가 일단락된 만큼 CBDC를 가상 환경에서 발행·유통하면서 기술적 검토를 이어갈 계획이다. 특히 CBDC의 이전방법은 계좌형과 분산원장(블록체인 기술을 활용)을 기반으로 한 토큰형 등으로 나눠 검토된다. 과거 한은은 CBDC의 발행은 직접하고 유통은 민간이 분산원장을 활용하도록 연구했지만 이번 연구에는 발행과 유통을 모두 중앙은행이 책임지는 방식을 선택했다.

CBDC 발행에 그간 보수적 태도를 보여온 한은이 관련 연구 및 법적·제도적 기반 구축에 선제적으로 나선 것은 지급 결제 환경이 빠르게 바뀌어 CBDC 발행 필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디지털 기술이 접목된 금융업은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비대면 서비스가 대세를 이루며 신용카드나 카카오페이 등 다양한 비현금 지급 결제 수단이 시장을 빠르게 잠식해가고 있다.

카카오페이나 토스 같은 핀테크 기업이 급성장하면서 지난해 상반기(1~6월) 전자지급결제대행서비스(PG)의 하루 평균 이용 실적은 6,769억 원으로 6개월 만에 15.3% 증가했다. 이주열 한은 총재도 지난달 금융통화위원회 정례 회의 이후 기자간담회에서 “가까운 시일 내 CBDC를 발행할 필요성이 크지 않은 것이 사실이지만 워낙 지급 결제 환경이 빠르게 바뀌고 그에 따라 CBDC 발행 필요성이 높아질 가능성에 대비해 연구를 본격화하고 있다”며 “한은의 CBDC 관련 연구는 주요국보다 속도가 빠르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기다 눈앞에 닥친 중국의 디지털 위안화 시행도 한은에는 위협이다. 자칫 한중 간 디지털 지급 결제에서 중국이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앞서 국회입법조사처는 “디지털 위안화가 성공적으로 정착해 국제 표준으로 채택되면 한국이 기술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고 밝혔다.



연구진들은 CBDC 발행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각종 법률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뤘다. 먼저 CBDC가 법화로서 발권력과 강제 통용력을 가지려면 한은법 개정을 통해 근거 규정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비트코인 등 각종 암호화폐는 발행 주체가 모호해 “CBDC와는 다르다”는 사실을 명확히 하고 있다. .

또 CBDC가 시장에서 성공적으로 유통되고 불법적인 자금 용도로 사용되지 않으려면 법률 등을 명확하게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CBDC는 전자적 형태로 발행되는 만큼 데이터 위·변조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방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CBDC를 위·변조한 경우 결제를 무효로 보거나 유효로 하되 추후 손해배상 청구 등으로 해결하는 방안을 사전에 검토해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CBDC로 발생할 수 있는 자금 세탁이나 통화 위조 등에 대한 논의도 나왔다. 금융거래 등을 이용한 자금 세탁 행위를 규제하고 있는 특정금융정보법에 CBDC를 추가해 현금과 동일하게 고액 거래 보고 의무를 부과하는 등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형법상 통화위조죄 등을 적용하기 위해서는 형법을 제·개정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한은은 이날 발표된 법률적 검토 사항을 바탕으로 이를 기술적으로 어떻게 구현할지 등을 가상 환경 실험을 통해 연구할 계획이다. CBDC의 사용 편리성 제고나 개인 정보 보호 기술 확보 등 다양한 테스트를 거친 뒤 이르면 올해 안에 종합 평가를 내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은 관계자는 “연내 가상 환경에서 파일럿 시스템을 구축해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 테스트를 계획대로 수행할 것”이라며 “관련 법률 및 제도의 정비 방안도 선제적으로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현재 한은은 CBDC 연구를 3단계로 나눠 진행하고 있다. 1단계 사업인 ‘CBDC 기반 업무(설계·요건 정의, 구현 기술 검토)’와 2단계 사업인 ‘CBDC 업무 프로세스 분석 및 외부 컨설팅’은 이미 마쳤다. 다만 한은은 국내 현금 이용 비중이 낮지 않고 지급 결제 서비스가 다양하게 발달돼 있어 CBDC 도입을 급하게 추진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조지원 기자 j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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