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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금융 혼란…美·유럽은 CBDC 신중

[글로벌 CBDC 어디까지]

"먼저하는 것보다 제대로가 중요"

연준 '사회적 이익·리스크' 실험

ECB·일본은 '발행 타당성' 조사

자금세탁 악용 소지 경계 시선도





중국이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 발행에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가운데 미국·유럽을 비롯한 주요국들은 CBDC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면서도 발행 가능성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전자결제의 필요성이 더욱 커졌지만 사생활 침해와 금융시장 혼란 가능성 때문에 고민이 깊어지고 있는 것이다. 다만 비트코인을 비롯한 민간 암호화폐가 점차 제도권에 편입될 움직임을 보이면서 이를 견제하기 위한 각국 중앙은행의 행보도 빨라질 것으로 관측된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CBDC를 연구하기 위해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이는 디지털 화폐 발행에 따른 사회적 이익은 물론 리스크도 함께 따져보기 위함이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해 10월 국제통화기금(IMF) 연차총회 연설에서 미국의 CBDC 도입과 관련해 “먼저 하는 것보다는 제대로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밝혔다. 미국이 CBDC 발행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올해 봄 중 CBDC에 대한 상세한 분석을 담은 보고서를 내놓을 예정이다. 이와 함께 일정 기간 동안 제한된 양의 디지털 화폐를 담는 바우처의 상용화 가능성을 조사하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디지털 화폐를 쓰는 이용자의 익명성을 보장하는 방안으로 바우처가 활용될 수 있어서다. 영국중앙은행은 CBDC 발행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관련 조사를 진행 중이며 일본은행의 경우 올해 디지털 화폐 발행 타당성 조사에 나설 계획이다.

이처럼 주요국들의 행보가 중국에 비해 미진한 것은 사생활 침해 등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블룸버그는 “중국에서는 사생활이 걸리적거리는 이슈는 아니다”라면서 “하지만 유럽과 미국에서는 당국에 의해 사생활이 노출될 수 있다는 점이 용인되기 어렵다”고 전했다. 앤드루 베일리 영국중앙은행 총재는 지난달 중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디지털 화폐에 대한 적절한 수준의 프라이버시 문제는 뜨거운 논란이 될 여지가 있다”며 “디지털 화폐를 발행하는 데 도전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디지털 화폐로 인해 기존 금융시장의 질서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브느와 꾀레 국제결제은행(BIS) 이노베이션허브 총괄은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통화가 (디지털 화폐로서) 무제한적인 방식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면 은행 예금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CBDC가 상용화될수록 시중은행을 찾는 이들이 줄어들 것이라는 얘기다.

아울러 CBDC 발행으로 디지털 격차가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점도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고민거리다. 디지털 화폐를 사용하려면 스마트폰 등이 필요한 만큼 비용 부담이 있는 이들에게는 불리할 수 있다. 이 밖에 사이버 공격이나 해킹 등에 노출될 수 있다는 점도 CBDC의 난제로 거론된다.

자금세탁에 활용될 소지가 있는 민간 암호화폐가 제도권에 점차 편입되면서 각국 당국이 경계의 시선을 보내고 있는 점도 CBDC 향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일각에서는 민간 암호화폐를 막기 위해 CBDC 발행이 앞당겨질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실제로 지난달 인도 정부는 민간이 만든 모든 암호화폐를 금지하는 대신 인도중앙은행(RBI)이 발행하는 공식 디지털 화폐를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암호화폐 가격이 급등락하며 불안정성이 커진데다 암호화폐가 불법 거래에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에서다.

미국에서는 평소 암호화폐 비관론자로 알려진 재닛 옐런 재무장관이 암호화폐에 대한 규제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달 상원에서 열린 청문회 당시 “많은 암호화폐가 주로 불법 금융에 사용되는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그런 사용을 축소시키고 돈세탁이 안 이뤄지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김기혁 기자 coldmet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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