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을 사용하는 세계인은 어림잡아 39억 명. 이들 가운데 약 90%에 해당하는 35억 명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하고 있다. 활성 계정만 따지면 페이스북(24억 명)과 유튜브(20억 명), 왓츠앱(16억 명) 순으로 거대한 이용자 규모를 자랑한다. 이처럼 많은 계정의 수만큼 재계 인사들의 SNS 활용법도 제각각이다.
◇사업 지원사격도 하고, 미래 전략도 슬쩍 보여주고
인스타그램 팔로어 수가 약 53만 명이나 되는 정용진 신세계(004170)그룹 부회장은 가장 활발한 인플루언서 활동을 하는 최고경영자(CEO)로 꼽힌다. 정 부회장은 인스타그램에 요리와 맛집·쇼핑·골프 등 여러 주제를 아우르며 ‘친근한 재벌가’로 거듭나고 있다. 정 부회장은 팔로어들이 사진 속 청바지나 옷 브랜드 등이 궁금해 댓글로 질문하면 직접 답글을 다는 등 인스타그램을 소통의 창구로 이용하고 있다.
정 부회장의 SNS 행보는 마케팅 측면에서 효과가 매우 크다. ‘요리 마니아’이자 미식가로 알려진 그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신세계푸드 ‘올반 옛날통닭’과 ‘노브랜드 재래김’ 등은 깜짝 홍보 효과를 내기도 했다.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와 함께 만든 ‘바닷장어 무조림’은 정 부회장의 인스타그램에 등장한 뒤 한 주 만에 1만 9,000팩이 완판됐다.
신세계그룹의 경영전략도 그의 SNS를 통해 엿볼 수 있다. 일례로 정 부회장은 지난해 7월 이마트 월계점에서 카트를 끌고 장을 보는 사진과 강릉점에 방문한 사진을 올렸다. 월계점과 강릉점은 요즘 이마트가 펼치는 오프라인 매장 강화 전략을 대표하는 곳이다. 온라인 쇼핑에 밀려 위기를 맞은 국내 대형 마트들이 오프라인 매장을 닫고 있지만 이마트는 반대로 기존 매장을 리뉴얼하고 신규 출점하는 역발상 전략을 실행하고 있다.
정 부회장이 부산 롯데 시그니엘 사진을 올리고 한 달 뒤 500m 거리에 프리미엄 그랜드 조선 호텔이 개장하는가 하면 최초의 빵 굽는 카페로 알려진 스타벅스 더양평DTR점을 방문해 관련 사진을 올리는 식으로 지원사격을 하기도 한다. 국내 최대 규모인 이 매장은 업계 1위인 스타벅스가 커피 시장에서 푸드 제품으로 신사업을 확장하는 시발점이 됐다. 업계 관계자는 “정 부회장이 올리는 게시물들은 모두 직접 올리는 것으로 각각의 의미가 있다”며 “팔로어들이 그 의미를 알아채주기 바라는, 흡사 수수께끼 문제를 푸는 것과 비슷한 놀이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직관(직접 관람)의 기쁨부터 정책 송곳 비난도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트위터 등 여러 SNS를 활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시각적 소통이 수월한 인스타그램에는 흑백 사진 계정을 따로 만들고, 야구 팬들의 활동이 활발한 트위터에는 두산(000150)베어스의 한국시리즈 직관 소식을 전하는 등 플랫폼 특성에 맞춘 소통을 꾀한다. 한국 상공인을 대표하는 법정 경제 단체의 수장으로서 정부에 대한 쓴소리를 정제된 표현으로 올려 대중의 관심을 유도하기도 한다. 박 회장은 지난해 하반기 정·재계를 뜨겁게 달군 이른바 ‘기업 규제 3법’의 독소 조항을 없애기 위해 국회로 달려가 의원들 설득에 매달렸다. 이와 관련해서도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TV 뉴스에 국회가 나왔다. 손녀가 보더니 ‘여기 할아버지 회사!’라 한다. 내가 국회 찾아가는 뉴스를 많이 본 탓이다 ㅠㅠ”라며 씁쓸한 심경을 드러내기도 했다.
◇“고객께 달려가요”…사장님의 친근함이 수준급
긴밀한 소통으로 충성 고객을 확보하려는 마케팅도 SNS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과거 웅진식품에서 아침햇살 등을 히트시킨 조운호 하이트진로음료 대표의 SNS 활용은 그런 면에서 주목을 받는다. 예를 들어 서울에 사는 A 씨가 집에서 블랙보리를 마신 소감을 사진과 함께 트위터에 올리면 조 대표는 무한 검색으로 그 글을 찾아내 리트윗(전달)하거나 멘션(대화)을 하며 소통을 시작한다. ‘블랙보리 출시 3주년 기념’ 이벤트 같은 프로모션도 트위터에서 진행한다. 몇 년 전만 해도 조 대표의 밀착 홍보를 생경해 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이제 조 대표는 트위터 유명인이다. 그와 대화하고 싶어 일부러 편의점에서 블랙보리를 구입해 인증 샷을 찍었다는 이들도 종종 보일 정도다. 트위터에서 인연을 맺은 이들이 직접 그린 조 대표의 캐릭터도 있다. 조 대표는 “제품에 대한 의견 청취를 위해 처음 시작한 트위터지만 관심 분야에 집중하는 젊은 층과 쌍방향 소통이 된다는 점을 깨닫고 개인 계정을 토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며 “나이와 성별을 뛰어넘는 대등한 관계 설정을 통해 ‘보여주기’가 아닌 진정성이 담긴 계정 운영을 꾀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니 이분도 SNS를 한다고?
‘은둔형 총수’에 가까웠던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이 최근 유튜브에 등장해 화제를 모았다. 박 회장은 미래에셋증권과 대우증권의 합병 기념식 등 굵직한 행사를 제외하면 공식 석상에서 얼굴을 보기 힘든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달 14일과 15일 ‘박현주 회장과 함께하는 투자 미팅’ 영상에 출연해 자신의 투자 철학을 비롯해 테슬라나 LG화학·삼성전자·네이버 등 종목에 대한 전망을 제시했다. 앞으로 상장지수펀드(ETF)와 리츠(REITs) 등을 활용한 연금 자산 배분 전략, 박 회장이 바라보는 투자 등을 주제로 진행된 토론 영상 2개를 더 공개할 예정이다.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역시 자사 유튜브 공식 채널에 자주 등장한다. 그는 총 6개짜리 강의 영상을 직접 찍어 ‘현대카드 DIVE’ 채널에 공개했다. 영상에서 현대카드의 브랜딩 철학을 소개하는가 하면 마케팅 전문가로서 프로페셔널한 모습과 그가 주력하고 있는 사업인 ‘상업자 표시 전용 신용카드(PLCC)’에 대한 고민을 토로하는 등 여러 매력을 선보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함영준 오뚜기(007310) 회장은 딸 함연지 씨의 유튜브 채널에 모습을 드러내 ‘아버지’와 ‘회장님’이라는 두 단어의 경계를 넘나들며 친근함을 뽐내고 있다. 어버이날 특집 영상에 모습을 비친 함 회장은 자사 제품 ‘진진짜라’에 얽힌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내는가 하면 크리스마스 영상에도 등장해 딸에게 선물을 주는 소탈한 아버지의 모습으로 대중의 호감을 샀다. 딸과 함께 장애인에게 일감을 주고 자립 기반을 제공하는 굿윌스토어 장애인 재활 지원 사업에 참여하는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평소 1인 미디어에 관심이 많았던 윤재연 블루원 대표이사는 직접 채널을 개설해 크리에이터로 등장했다. 윤 대표는 골프 콘텐츠 채널 ‘공 때리는 언니’를 통해 1인 유튜버로서 콘텐츠 기획과 촬영 제작 등 전 과정에 직접 참여하고 있으며 실시간 댓글로 구독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특히 ‘골프는 비싼 운동’이라는 편견을 깨고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기 위해 ‘골싸(골프를 싸게 칠 수 있는 노하우)’를 알리는 등 골프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수민 기자 noenemy@sedaily.com, 박시진 기자 see1205@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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