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졸업을 앞둔 대학생의 절반 이상이 일자리를 구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실시한 ‘대학생 취업 인식도 조사’ 결과 올해 예상 취업률은 44.5%에 그쳤다. 이런 가운데 매년 80% 안팎의 높은 취업률을 자랑하는 한국폴리텍이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직업교육 최전선에 서 있는 한국폴리텍 이사장이 노동계의 ‘전설’로 통하는 이석행 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이다.
이 이사장은 4일 한국폴리텍 인천캠퍼스 제6기술관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글로벌 시장에서 무한경쟁을 하는 기업들이 요구하는 인력을 양성하고 양질의 직업교육을 받은 인력을 기업들이 적극 채용함으로써 직업교육과 취업의 선순환 고리를 구축해 청년실업난을 해소하는 것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노동시장의 혁신”이라고 말했다. 노동운동의 방향과 관련해서는 “민주노총 위원장 시절에도 일관되게 노사정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기업이든 노조든 자신이 있으면 언제든 대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4차 산업혁명 시대 도래와 코로나19 충격파로 산업구조가 급변하고 있으므로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고 미래 먹거리를 찾기 위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며 “노동자의 대표기구인 노동조합은 사회적 책무를 갖고 있는 만큼 그 책무에 충실할 때 존재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과거 노동운동을 하실 때와 현재 교육현장은 많이 다를 것 같은데.
△공고를 졸업한 후 대동중공업에 병역특례로 들어가 기술자로 일한 적이 있다. 지난 1977년 나는 일당 770원을 받았는데 일반 채용으로 공장에 들어온 다른 직원은 1,000원 정도 받았다. 처우에서 사무직과 생산직의 차이도 컸다. 사무직과 생산직 직원이 이용하는 식당이 구분될 정도였다. 처우가 너무 열악하다 보니 노동조합을 만들었고, 병역특례 직원들의 애로점을 사측에 알리려고 대의원 활동을 하다 노조위원장 선거까지 나가게 됐는데 운이 좋게도 당선됐다. 그때부터 30년 가까이 노동운동을 하면서 노동자의 복지 외길만 걸었다. 폴리텍으로 옮긴 뒤에 다시 현장으로 돌아온 느낌이다. 젊은 시절 공장에서 일하며 경험했던 교육과 현장의 괴리에 대한 아쉬움이 방향을 설정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교육과 생산현장의 간극이 심각한 수준인가.
△재작년 독일을 방문했을 당시 직업교육대학과 기업들이 유기적으로 협조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당시 만난 독일 상공회의소 관계자가 ‘한국 교육을 이해할 수 없다. 당신들 마음대로 교육시켜놓고 기업에 뽑으라고 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묻더라. 독일의 경우 노사정 협력을 통해 직업훈련이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한다고 한다.
-독일의 노사정 협력 모델을 자세히 설명해달라.
△지난해 6월 독일은 노동4.0 실행 프로젝트로 ‘국가 지속 훈련 전략’을 내놓았다. 독일 최대 노동조합인 금속노조를 비롯해 독일 연방 노동사회부, 연방 교육부, 상공회의소 등 17개 노사정 단체가 손잡았다. 핵심은 디지털화에 따른 산업구조 및 노동시장의 변화에 대한 대응력을 높이기 위한 직업훈련에 있다. 교육부는 디지털 직업교육 플랫폼을 개발하고 노동사회부와 상공회의소는 평가인증 방안을 만든다. 노조는 직업훈련의 효율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조원의 참여율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제안한다. 우리 노동계가 이상적인 노조로 꼽는 독일의 금속노조는 노사정의 긴밀한 협력을 토대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 같다.
-국내에서 ‘일자리 미스매칭’이 심각한 수준 아닌가.
△기업체를 방문할 일이 많은데, 같은 사업장을 한 달 만에 다시 가보면 현장이 확 바뀌고 있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글로벌 무한경쟁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기업들이 치열하게 몸부림치는 것이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스펙에 맞게 인재를 맞춤형으로 공급하는 게 교육기관이 해야 할 역할이지만 과연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기업현장은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데 직업교육 방식은 10여년 전과 같다. 실제로 기업 경영인들을 만나보면 대졸자를 그대로 써먹을 수 없다며 곧바로 투입할 수 있는 인력을 양성해달라고 주문한다. 예전처럼 기름때 잔뜩 묻은 작업복을 입고 일하라고 하면 절대로 안 한다. 용접이나 도금·주물 등 3D 업종이 일할 사람을 구하지 못해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데 최근 현장도 많이 변했다. ‘스마트팩토리’ 보급으로 한층 깨끗하고 안전해졌다. 넥타이를 매고 용접하는 시대가 온다는 얘기다. 이러한 추세에 맞춰 고급 기술인력을 양성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기업들이 양질의 직업교육을 받은 인력을 적극 채용함으로써 일자리 미스매칭을 해소하고 젊은이들이 안정적이며 미래지향적인 직업을 갖도록 하는 것이 노동시장의 혁신이다.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한데 해법은 무엇인가.
△기업은 절실하게 원하는 인재를 정규직으로 채용하기 마련이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비정규직 대부분은 단순서비스직이다. 시대는 하이테크 인재를 요구하는데 단순서비스직으로는 경쟁력을 갖기 어렵다. 그렇다면 국가 차원에서도 이들을 고급 기술인력으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직업교육의 질적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양질의 직업교육을 통해 인력의 질을 끌어올리면 자연스럽게 정규직으로 갈 수 있는 인력풀도 넓어질 것이다.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재학생 응시자 수가 4만7,000여명 줄었다고 한다. 학령인구가 급격하게 감소하는 만큼 대학도 위기다. 교육 파트에서 질 높은 직업교육을 제공해 젊은이들이 미래지향적인 일자리를 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양보다 질에 초점을 맞춘 직업교육, 더 나아가 노동시장의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직업훈련을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한데.
△내년도 예산안 중 직접 일자리 관련은 3조1,164억원으로 올해에 비해 2,577억원(9.0%) 늘어난 반면 직업훈련 예산은 2조2,754억원으로 320억원(1.4%) 증가하는 데 그쳤다. 예산 증액분만 놓고 봐도 약 8배나 차이가 난다. 노인돌봄·장애인일자리 등 재정을 통해 창출해야 하는 일자리도 필요하다. 하지만 청년들에게 잡은 물고기를 사주는 게 아니라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야 지속 가능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
-노동시장 유연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과거에는 노동자에 대한 징계수단 중 상당수가 부서 전출이었다. 이질적인 부서에 배치해 버틸 수 없게 만드니 노조 차원에서는 이를 막기 위해 투쟁했고 노동시장은 경직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4차 산업혁명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질적으로 다른 기술을 요구받는다는 얘기다. 기술이 변하면 사람이 따라가야 기업이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 기업이 영속해야 노동자의 일자리도 지킬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노동시장 유연화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민주노총 위원장 시절에도 산업구조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당시 ‘조선업 위기론’이 불거졌는데 이를 국민적 담론으로 확장해 산업 전반에 올 충격을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위기가 닥친 후 대응하면 회사는 정리해고 등 극단적 수단을 택하고 노조는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투쟁에 나서면서 갈등만 커지게 된다.
/정민정 논설위원 jminj@sedaily.com
1958년 충남 청양에서 태어나 전북기계공업고를 졸업한 뒤 대동중공업에 들어갔다. 대동중공업 노조위원장에 이어 전국금속산업노동조합연맹 부위원장을 맡았다. 2007~2009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을 지냈다.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총파업을 주도하다 6개월간 징역을 살기도 했다. 그 뒤 우경일렉텍 기술고문을 거쳐 2016~2017년 더불어민주당 전국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2017년부터 학교법인 한국폴리텍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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