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거리라고 하면 전통적으로 종로구 인사동과 삼청동이 강세지만 지역과 거리의 정체성이 강해지면서 평창동, 홍대앞, 서촌, 성수동, 자하문로 등이 새로운 ‘미술가(街)’로 부상했다. 특히 강남 지역은 미술품 구매력이 집중된 지역이라 영향력이 크다. 일명 ‘명품거리’라 불리는 강남구 청담동에 리모델링을 거친 새로운 화랑빌딩이 들어섰다. 40년 전통의 주영갤러리를 주축으로 호리아트스페이스, 아이프(aif)등이 둥지를 튼 청담동 노아빌딩이다. 박영덕화랑을 비롯해 한때 수십 개 갤러리가 입점했던 네이처포엠 빌딩과 인접했고, 송은아트스페이스와 이유진갤러리 등이 인접해 집적효과가 큰 곳이다.
이곳 명품거리의 화랑빌딩 갤러리들이 한국의 근현대미술을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연합전시 ‘청유미감(淸遊美感)’을 기획했다. 5개 층에 걸친 전시에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김환기, 한국 조각의 대표작가인 권진규, 한국 현대미술의 블루칩인 이우환, 올해 탄생 100주년 기념전을 앞둔 박래현 등 거장들의 80여 점 작품이 어렵사리 모였다. 전시제목은 ‘청유’의 사전적 의미인 ‘아담하고 깨끗하며 속되지 않은 놀이’에 아름다움에 대한 느낌이라는 ‘미감’을 더했다. 전시를 기획한 김윤섭 한국미술경영연구소 대표는 “일상에서의 행복한 감성적 유희라는 의미로 마련한 전시에 ‘미술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과 매력을 일상에서 편안하게 만나보자’는 제안을 담았다”고 소개했다. 그간 강남의 갤러리가 해외미술에 주력하던 것과 달리 한국 근현대미술을 들여다 본 점이 의미있다.
지하1층과 1층의 주영갤러리는 김환기·박래현·이우환의 작품을 고루 전시했다. 이우환의 대표작 ‘대화(Dialog)’가 200~300호 대형으로, 다양한 색감의 작품들로 선보여 눈길을 끈다. 지하1층에서는 추상의 두 거장 김환기와 박래현의 작품들이 공명한다. 운보 김기창과 함께 ‘부부화가’로 유명했던 박래현은 동양화의 섬세한 설채와 면 분할에 의한 화면구성, 먹의 번짐과 색채대비 에 원시미술적 특징이 가미된 장식적인 추상화풍을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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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 호리아트스페이스에는 이우환의 회화와 수채화가 권진규의 테라코타 인물상 3점과 나란히 자리 잡았다. 국내에 많이 소개되지 않은 이우환의 투톤 컬러 ‘대화’, 바람 및 점 시리즈가 다양하게 걸렸다. 극단의 추상인 이우환의 회화와 극적인 구상성을 보여주는 권진규의 조각은 너무 다르면서도 ‘초월성’의 공통분모를 갖는다.
4층 아이프에서는 김환기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항아리, 점·직선·곡선, 자연 등 다양한 소재들을 모티브로 한 드로잉 20여 점이 집중적으로 걸렸다. 오는 16일까지 열리는 전시기간에 맞춰 환기미술관 맞은 편 부암동 웅갤러리에서도 김환기의 친필 사인이 있는 60여 점의 드로잉전이 함께 열린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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