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한도와 금리 확인은 스마트폰 터치 몇 번이면 끝났다. 은행 대부분이 안내화면 전면에 ‘한도 알아보기’ 버튼을 별도로 배치해 본격적인 대출 신청 절차를 밟는다는 느낌도 없었다. 이틀에 걸쳐 은행 4곳에서 대출 한도와 금리를 조회한 이씨는 바로 다음날 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한 A은행의 앱에서 대출을 신청했지만 거절당했다. B은행 앱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연체 이력이 없고 신용점수도 만점에 가까운 이씨로서는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이씨가 은행 고객센터에 이유를 묻자 “너무 단기간 내 여러 금융기관에 대출 조회를 했기 때문”이라며 “대출을 받으려면 영업점에 직접 방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영업시간에 은행을 가기 어려운데다 신속한 대출이 필요해서 비대면으로 받으려던 것인데 의미가 없어졌다”며 “한도 조회만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사전에 알았다면 여러 곳에 조회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은행들이 여러 금융기관에 대출 한도를 조회했다는 이유만으로 사전 고지 없이 소비자의 비대면 대출을 거절하고 있다. 금융사 여러 곳의 대출상품을 비교·추천해주는 핀테크 서비스가 인기를 끌면서 은행들도 복잡한 절차 없이 언제나 대출 한도와 금리를 확인할 수 있다는 강점을 내세워 ‘비대면 간편 대출’ 경쟁에 뛰어들었지만 실제 ‘금리 쇼핑’에는 보이지 않는 벽을 세워둔 셈이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들은 소비자가 단기간에 금융기관을 통해 신용 정보를 과다하게 조회할 경우 대출 사기나 부실 고객일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 비대면 대출 취급을 제한하고 있다. 2011년 10월 이후로는 신용조회 기록만으로 신용등급이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법이 개정됐지만 금융 일선 현장에서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불이익이 남아 있다. 금융 환경의 변화 속도를 금융사의 여신 심사·신용 평가 기준이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신용정보회사를 통해 대출 조회 기록이 자동으로 금융기관에 통보되는 시스템”이라며 “짧은 기간에 여러 곳에서 대출 조회를 하는 고객은 동시 대출을 받을 위험이 있는데다 통계적으로 연체 가능성도 높아 대출 심사를 보수적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른 은행 관계자도 “은행 입장에서는 리스크 관리를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며 “과다 조회 외에 다른 문제가 없다면 영업점을 통한 대출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여러 곳에서 대출 한도를 조회하는 것만으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은행들이 사전에 알리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22일 기준 신한·KB국민·우리·하나·농협·씨티·카카오은행 등 주요 시중은행과 웰컴·SBI 등 저축은행 총 9곳의 모바일 앱에서 직장인 신용대출 상품의 안내를 살펴본 결과 주요 금융사 가운데 대출한도 조회 횟수가 승인 제한의 사유가 될 수 있다고 안내한 곳은 없었다.
신용정보협회에서만 “단기간 내 다수의 신용조회를 하는 경우 대출 사기 방지 목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안내하고 있을 뿐이다. 일부 은행의 경우 상품 유의사항에 “대출 신청 시 고객의 신용정보 조회 이력이 신용회사 정보에 제공된다”고 명시했지만 신용정보 조회 기록이 어떻게 활용되는지 모르는 일반인으로서는 이 내용만으로 대출이 제한될 수 있다는 사실을 짐작하기는 어렵다.
금융사 간 대출상품 비교·추천 서비스와 신용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핀테크 업체들도 이에 대한 안내가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오히려 “최대한 다양한 곳에서 금리와 한도를 비교해보고 적합한 상품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는 ‘팁’을 강조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핀테크 플랫폼을 통한 대출 한도 조회는 신용조회 기록으로 남지 않아 핀테크 기업들로서는 ‘금리 쇼핑’을 활성화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핀테크 플랫폼으로는 대출을 조회할 수 있는 금융사가 한정적인 만큼 은행은 물론 핀테크 기업들도 과다한 대출 한도 조회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고객들에게 사전에 명확하게 알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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