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인터넷전문은행 규제 혁신이야말로 고여 있는 저수지의 물꼬를 트는 일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지난 2018년 8월 서울시청에서 열린 인터넷은행 규제혁신 현장방문 행사. 문재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인터넷은행은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도 금융시장에 정착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규제가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19세기 말 영국의 ‘붉은깃발법’을 예로 들면서 “혁신성장을 위한 규제 혁신은 속도와 타이밍이 생명”이라며 “지금의 제도가 신산업 성장을 억제한다면 새롭게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년 반이 지난 지금 국회는 거꾸로 가고 있다. 5일 국회 본회의에서는 인터넷은행 대주주의 자격 요건을 완화하는 인터넷전문은행특례법 개정안이 예상을 깨고 부결됐다. 인터넷은행법 개정안은 전날 ‘삼수’ 끝에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할 때만 해도 본회의 처리가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예상됐지만 더불어민주당·정의당 등에서 대거 반대·기권표가 나오면서 결국 처리가 무산됐다. 반면 ‘타다금지법’으로 불리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은 통과 가능성이 높아 모빌리티 혁신기업인 타다는 사실상 영업이 불가능해졌다.
인터넷은행법 개정안은 인터넷은행 주주의 한도 초과 지분 보유 승인 요건에서 공정거래법 위반 전력을 삭제하는 것이 핵심이다. 국내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의 과점성을 고려하면 인터넷은행 대주주 자격을 기존 금융사와 똑같이 규정하는 것은 지나치게 엄격한 규제라는 지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실제 이 규정으로 KT·카카오 같은 ICT 기업이 각각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의 최대주주로 올라서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지난해 카카오뱅크는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이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를 받으면서 대주주 적격성 심사에 차질을 겪었다. 1호 인터넷은행인 케이뱅크 역시 KT가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되면서 KT를 통한 대규모 자금수혈 계획이 모두 막힌 채 1년째 개점휴업 상태다. 해외에도 금융과 무관한 특정 법 위반을 은행 대주주 결격 사유로 삼는 사례가 없다는 점도 개정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업계 안팎에서는 개정안이 통과되면 ICT 기업이 인터넷은행의 최대주주로 올라서 진입 장벽이 높은 기존 국내 금융계에 긴장을 유발하는 ‘메기 효과’가 본격화할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더욱이 홍콩·싱가포르·대만 등을 중심으로 올해 아시아에서 경쟁하는 인터넷은행만 50개에 달할 것으로 전망돼 국내 금융혁신의 속도를 올려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하지만 일부 정치권이 ‘은산분리 완화는 재벌의 금융업 진출을 돕는 것’이라는 해묵은 논리를 앞세우면서 또다시 금융 혁신의 발목을 잡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법안을 발의한 김종석 미래통합당 의원은 “통합당이 국익을 앞세워 (찬성을) 해준 건데 당리를 앞세워 이념 교조주의에 빠진 이들이 이렇게 (부결했다)”라고 지적했다. 금융업계의 한 관계자는 “인터넷은행은 대주주 대출 자체가 불가능해 ‘재벌의 사금고화’라는 주장은 어불성설인데도 반대 논리로 이용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인터넷은행이 정치권의 이해관계로 생존이 어렵다는 결과 앞에서 한국의 디지털 금융 혁신과 관련된 투자도 급랭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파장이 커지자 여야는 다음 회기에 개정안을 재심의해 처리하는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특히 이 법안은 금융소비자보호법 제정안과 함께 묶어 통과시키기로 여야 간 합의가 이뤄진 상태에서 부결된 것이라 국회가 한때 파행을 빚기도 했다. 여야 합의에 따라 4월 총선 이후 임시국회가 다시 열리면 20대 국회에서 법 개정이 이뤄질 마지막 가능성이 남아 있다. 다만 이미 1년째 대출영업이 중단돼 한시가 급한 케이뱅크는 국회 상황을 주시하면서 대체 방안을 찾을 방침이다.
법을 앞세워 혁신을 가로막는 국회의 움직임은 타다금지법으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파행된 국회 본회의가 6일 재개되면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개정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진다. 타다를 국토교통부의 총량제로 편입시키는 내용의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타다 같은 플랫폼 운송사업자는 기여금을 내고 별도의 플랫폼 운송사업 면허를 발급받아야 한다. 특히 현행 타다의 기반인 11~15인승 렌터카의 운전자 알선 사유가 제한돼 사실상 영업이 불가능해진다. 이미 타다 측은 ‘타다 베이직 서비스’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빈난새·구경우·오지현기자 binthe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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