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국민연금은 정부 당국자가 기금 운용 관련 의결권을 쥐고 있는 사실상 세계 유일의 연기금이다. 더욱이 세계 5대 연기금 가운데 의사결정기구의 수장이 현직 장관인 것도 국민연금뿐이다. 또 20명의 위원 중 정부 당국자(6명)와 국책연구기관(2명)을 포함한 범(凡)정부 표만도 8표에 달한다. 정부의 입김이 센 농·수협중앙회 등 지역 가입자 대표까지 합하면 과반의 의결권을 사실상 정부가 틀어쥐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는 탁월한 투자 성적을 내고 있는 캐나다공적연금(CPPIB)이나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CalPERS·캘퍼스) 등과 극명하게 대조되는 지배구조다. 캘퍼스는 1992년 주 헌법 개정을 통해 행정부와 의회로부터 기금의 운용과 예산집행의 ‘절대적 자유권(plenary authority)’을 받았다. 캐나다공적연금도 1998년 CPPIB라는 별도기구를 분리해 기금 운용의 독립성을 확보했다. 네덜란드의 ABP도 내무장관의 지배를 받다 1996년 독립 자회사 형태로 민영화한 뒤 기금을 독자적으로 관리·운영하는 상황이다.
해외 연기금들이 이미 도입, 운영하고 있는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스튜어드십코드)이 국내에서는 되레 정부나 노동·시민단체 등의 기업 경영개입의 통로로 악용될 수 있다고 우려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재계의 이 같은 우려에도 정부 당국은 기금운용 독립성 확보에 대해 손을 놓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0월 운용체계 개편안을 내놓기는 했지만 상근 전문위원이라는 ‘옥상옥’ 조직만 신설했을 뿐 근본적인 변화는 없었다. /김상훈기자 ksh25t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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