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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워치] 사각사각 손맛에…다이어리 '필(筆)' 꽂히다

■ 디지털시대 부활하는 다이어리

문구 넘어 패션아이템으로 인기

'스벅 한정판' 중고거래서도 불티

족자·USB 등 폼팩터도 다양해져

자신의 취향 담아 손수 만들기도





# 네이버 온라인카페 중고나라에는 요즘 하루 1,000건 가까이 거래되는 상품이 있다. OO벅스나 0리스 등 유명 커피전문프랜차이즈들이 고객에게 사은품으로 주는 다이어리다. 커피·음료 등을 17잔 이상 구매한 고객에게 한정판으로 증정하는 OO벅스 다이어리의 경우 중고거래 온라인 사이트에 상품을 올리면 그 즉시 사겠다는 답글이 줄줄이 이어진다. 심지어 자정을 넘긴 새벽에 중고나라에 올린 다이어리 판매 글도 100여건씩에 달하는데 보통 수분 내에 판매가 완료된다.

# 한 해가 저물어갈 무렵이면 교보문고가 매장 내 진열·판매에 적지 않게 신경을 쓰는 상품이 있다. 다이어리다. 스마트폰 대중화 이후 한때 사양길을 걷던 상품이었지만 의외로 시장이 사라지지 않고 꾸준히 수요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10월부터는 매달 수천종의 다이어리가 팔린다고 한다. 이에 따라 교보문고는 매장 내 문구·팬시용품 코너인 ‘핫트랙스’에서 다이어리 마케팅에 적지 않은 공을 들인다고 한다.



이 같은 사례들은 연말이면 어김없이 부활하는 국내 다이어리 시장의 일면이다. 이동통신기기와 클라우드서비스가 대중화된 오늘날에도 아날로그·종이시대의 대표 상품인 다이어리는 퇴장하지 않고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물론 과거처럼 관공서나 기업·학교 등이 대량으로 주문해 제작하는 천편일률적인 다이어리는 점차 퇴조하고 있다. 대신 개인이 직접 자신의 취향과 생활습관에 맞춘 소장용 제품들이 애용되는 추세다.

“낙서하듯…아이디어 기록하기 편해”

국내 정보기술(IT) 분야 대기업에서 소프트웨어(SW) 개발을 담당하는 20대 후반의 오진현(가명)씨도 다이어리 마니아다. 중학생 시절 부친의 직장에서 제작한 다이어리를 받은 후 매년 부친에게 부탁해 부친의 회사나 파트너사·거래처 등이 제작한 업무용 다이어리를 모아 그중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것을 그해 자신의 일기·스케줄러로 써왔다. 취업한 뒤에는 본인이 직접 주요 국내외 기업들이 직원용으로 제작한 다이어리를 모으기도 했다. 오씨는 “학창시절에는 다이어리를 모은다고 하면 친구들이 저를 괴짜 취급했지만 요즘 OO벅스 다이어리 모으는 사람들을 보면 꼭 괴짜만은 아닌 것 같다”며 “어릴 적부터 무엇이든 생각나면 바로바로 메모하거나 삽화를 그리고는 했는데 스마트폰이나 노트패드로는 아직 그게 잘 안된다. 지금도 코딩하다 잘 안 풀리면 그냥 종이 위에 이것저것 끄적이고 낙서를 하는 식으로 아이디어도 기록하고, 스트레스도 푸는데 그럴 때는 역시 종이 다이어리가 가장 편하다”고 말했다. 어린이들 사이에서는 인기캐릭터 펭O를 모티브로 한 펭O다이어리 등이 인기다. 이 같은 인기 캐릭터 다이어리는 단순한 문구용품이 아니라 청소년들 사이에서 일종의 패션소품화돼 ‘인싸(주류)’ 문화처럼 확산되는 추세다.





다이어리를 제작하는 문구사·팬시업체 등도 이 같은 흐름에 맞춰 기업용 기업간거래(B2B) 다이어리에만 기대지 않고 개인소장용이나 이벤트성 소량 주문용 제품에 대한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다이어리 분야의 명가로 꼽히는 양지사가 대표적이다. 다이어리를 오프라인 매장이 아닌 온라인쇼핑몰에서도 주문 제작, 판매하기 시작했는데 온라인 주문시 고객이 직접 ‘편집기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만의 다이어리를 디자인해 고를 수 있도록 했다. 또한 다이어리 표지에 고객이 문구 등을 새겨넣을 수 있도록 하는 장비도 도입하기로 했다. 이 밖에 전통적인 책 형태를 벗어나 다양한 기능과 디자인을 적용한 폼팩터(형태 요소) 혁신으로 고객들이 자신만의 취향을 표현할 수 있도록 하는 제품들도 속속 나오고 있다. 예를 들어 업무프로젝트들을 일정별로 일목요연하게 보고 싶어 하는 사무직 고객들을 위해 스케줄러 챕터 부분을 잡아당기면 마치 족자처럼 좍 펼칠 수 있는 제품이 있는가 하면, 스마트폰 충전기 및 USB메모리를 내장한 고급형 다이어리도 나왔다. 또 다이어리에 이런저런 장식을 더해 꾸미거나 각종 메모·사진·그림 등을 마음대로 붙였다 뗐다 하기를 좋아하는 ‘다꾸족’을 겨냥한 제품들도 출시되고 있다.

현대차, 카시트 원단 재활용 커버 눈길

다꾸족 가운데 ‘고수’들은 아예 손수 다이어리를 제작하고 그 노하우를 온라인 커뮤니티나 블로그 등을 통해 공유하기도 한다. 바인더와 가죽·모직 표지, 속지, 스티커 등을 직접 일일이 구매해 재단하고 붙여 세상에 둘도 없는 자신만의 작품을 만드는 경우다. 이들에게 다이어리 꾸미기는 마치 열성 블로거들이 자신의 블로그를 열정적으로 디자인하고 편집하는 것과 같다. 다만 온라인 블로그가 아닌 오프라인 매체로 자신만 보고 즐긴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기업들도 사원용 다이어리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특히 현대차는 자사 차량제작용으로 확보한 시트 중 자투리를 모아 2020년도 다이어리 커버로 사용했다. 속지도 친환경 용지로 만들었다. 현대차 관계자는 “자칫 버려질 수 있는 자원을 재활용함으로써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친환경 문화에 동참한다는 의미에서 2020년도 직원용 다이어리에 자투리 자원들을 재사용했다”고 설명했다.

공직사회 감사 우려…나만의 코드로 적기도

공직사회에서도 종이재질의 다이어리는 여전히 애용된다. 다만 그 이유는 다소 씁쓸하다. 정부부처 사무관인 30대 초반 김현우(가명)씨의 사례가 그 단면이다. 그도 스마트폰보다는 다이어리를 쓰고 있다. 특히 그는 업무용 다이어리와 개인용 다이어리를 구분해 쓴다. 스마트폰 스케줄 애플리케이션도 쓰기는 하는데, 아무래도 부담스럽다. 업무를 지시대로 해도 억울하게 감사 대상에 오르기도 하는 공직자의 속성상 불의의 감사 대상에 오르면 스마트폰 등은 임의제출하거나 압수당할 수 있어서다. 스마트폰의 기록을 지운다고 해도 요즘에는 포렌식 조사로 상당 부분 복원할 수 있다고 하니 개인 일정까지 폰에 그대로 남기기 불안하다. 그나마 업무용 다이어리도 감사를 받으면 압수당할 개연성이 있어 아예 사적인 일정은 개인용 다이어리에만 쓴다. 김씨는 “예전에는 업무용 수첩·다이어리에 정확하게 또박또박 업무 내용과 개인 일정을 적고는 했지만 이제는 좀 민감한 업무 내용을 남들이 알아볼 수 없는 나만의 코드로 표시하거나 아예 타인은 식별하기 어려운 속기체로 휘갈겨 쓴다”고 말했다. /민병권·양종곤기자 newsroo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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