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를 시작하던 무렵, 제 누이동생도 방직공장 출신이었습니다.”
12일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중소기업 송년연찬회장. 400여명의 중소기업들을 격려하기 위해 온 이낙연 국무총리의 이 말에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이날 행사 시작을 알리는 동영상에는 우리나라가 6.25의 아픔을 딛고 고도의 산업성장을 이루는 장면들이 담겼다. 1960년대 방직공장 영상을 본 후 이 총리뿐만 아니라 객석에 있던 고령의 중소기업 대표들도 만감이 교차한 듯 침묵한 것이다.
이날 김기문 중기중앙회장은 인사말에서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해 힘들다는 말을 많이 들은 한 해였다”며 “최저임금의 속도조절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됐고 주52시간 도입의 1년 계도기간 부여 등 정부가 중소기업을 정책으로 많이 배려했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가 역대 최대”라며 대중소기업 상생방안과 협동조합 육성 지원방안 마련을 이 총리에게 건의했다.
이 총리는 우리나라가 처한 경제의 명암을 극명하게 비교했다. 이 총리는 “세계 경제가 하락하고 미·중 무역분쟁은 출구를 못 찾고 우리나라는 일본의 경제보복이 가중됐다”며 “수출은 12개월 연속 감소했고 경제성장은 예상보다 저조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총리는 “전반적으로 고용이 개선됐고, 선박 수출이 살아났으며 3년 연속 무역 1조달러가 가능하다”며 “우리나라 중소기업 수출 비중도 사상 첫 20%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김 회장이 건의한 두 제안에 대해서도 정책화를 약속했다.
축사를 위해 찾은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4차 산업혁명을 대응하기 위해 인공지능(AI)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중기부는 내년 제조데이터센터를 구축, 중소기업이 AI를 활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든다. 중기부가 스타트업과 벤처기업에 정책 주안을 둬 상대적으로 전통 제조업에 대해 소홀하냐는 지적에 대해 박 장관은 “포스코의 용광로 스마트공장은 27년간 이 곳에서 일한 근로자의 경험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전통제조업의 축적된 힘, 중소기업 대표의 직관이 없다면 AI시대로 갈 수 없다”고 전통제조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날 이 총리와 박 장관은 축사 중간 여러 번 박수를 받았다. 이 총리는 일정 탓에 행사장을 빠져나가면서도, 연회장에서 한 여자아이의 사진 촬영을 기꺼이 응했다. 이들의 특유의 농담들도 좌중을 웃게 했다. 김 회장은 이 총리가 오게 된 뒷얘기를 털어놨다. 김 회장은 “이 총리는 두 달 전 중앙회 회장단과 저녁자리에서 연찬회 참석 제의를 받자 ‘그 때까지 총리를 하고 있으면 응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술자리에서 약속을 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되새겼다”고 응수하고, “사모님들께 말씀드린다. 그 날 자리는 초저녁에 마쳤다. 늦게 들어온 분들이 있다면, 제 탓이 아니다”라고 농담을 했다. 박 장관은 “최근에 간부들과 부부동반 송년 오찬을 제안했는데 ‘부부동반을 한 적이 없다’고 강하게 거부했다”며 “인사고과에 반영하겠다고 하니 응했고 오찬 이후 모두 만족했다. 남편이 얼마나 힘든지, 누구와 일하는지 직접 보는 게 중요하지 않나”라고 말해 좌중에서 웃음이 터졌다. 이날 행사는 우수 협동조합 시상과 공연, 만찬이 어울어진 중소기업인의 축제였다.
/양종곤기자 ggm11@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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