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게차 짐에 결박되는 인권 유린을 겪은 20대 이주노동자 A씨가 새로운 일터를 찾는 게 쉽지 않아 보인다. A씨는 자신과 같은 스리랑카 국적 동료가 있는 사업장에서 다시 일해야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조언이 나온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스리랑카 동료 사업장은 다른 국가에 비해 적다. 게다가 A씨는 윤석열 정부에서 도입된 권역별 사업장 이동 제한 제도 탓에 전라·제주권에서 새 직장을 찾아야 한다. A씨가 어렵게 새 직장을 구하더라도 이전처럼 ‘혼자 스리랑카 노동자’로 일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25일 고용노동부와 전남이주노동자인권네트워크에 따르면 A씨는 이날 사업장 변경 허가를 받아 구직 활동이 가능해졌다. A씨는 고용허가제(E-9)로 입국한 근로자다. 고용허가제는 이번처럼 인권유린, 폭행 등 명백한 귀책 사유가 있는 사업장에서 일하는 근로자의 이동을 허용한다. 단 A씨는 고용허가제 사업장 중에서 새로운 일터를 찾아야 한다.
A씨는 고용부와 전남도청, 인권네크워크에서 구직 활동을 지원받는다. 하지만 새 일터 찾기가 쉽지 않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A씨와 같은 국적인 스리랑카 동료가 있는 사업장은 고용허가제 사업장의 10% 미만일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고용부에 따르면 작년 고용허가제 송출국 17개 국가 중 스리랑카는 7위를 기록했다. 인원으로 보면 전체 7만8000여명 가운데 5500여명으로 약 7%에 그친다. 인권 유린을 당한 사업장에서도 A씨는 혼자 스리랑카 국민이었다. 다른 5명 외국인 동료의 국적을 보면 동티모르가 4명, 중국이 1명이다. 2월 당한 지게차 결박이 5개월 뒤인 7월에서야 일반에 알려진 점도 A씨 주변이나 지역에 스리랑카 동료가 부족했기 때문이란 지적이 나온다. A씨는 여자친구와 결혼할 비용을 모으기 위해 자신이 당한 일을 참았다고 전해졌다.
윤 정부에서 고용허가제 인력은 권역 별로 사업장 이동이 가능하도록 제한한 점도 A씨 구직의 어려움이다. 이 제도에 따라 A씨는 전라·제주권에서만 구직 활동을 펴야 한다. 수도권 사업장에서 일할 수 없다. 고용허가제 사업장은 다른 지역 보다 임금이 높고 수요가 높은 수도권에 몰려있다.
고용허가제 사업장 현장도 A씨 구직의 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 고용허가제 사업장은 이주노동자를 여러 명 고용할 때 가급적 국적이 동일하길 바란다. 언어, 식습관 등 문화가 다르면 함께 일하는 데 어려움이 크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들도 한국 생활의 고충을 이겨내기 위해 같은 국적끼리 모인다. 노동계 한 관계자는 “사업장 귀책 사유라고 하더라도 이동이 결정된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는 데 달가워하지 않는 분위기가 현장에 있다”고 말했다. 인권네트워크 측으로 아직 A씨를 고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사업장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90일 이내 새 직장을 찾지 못하면 국내 체류 자격을 잃는다. 인권네트워크 관계자는 “정신적 피해 회복이 우선인 A씨는 말이 통하는 스리랑카 국적 동료 사업장에서 일해야 한다, 본인도 희망하고 있다”며 A씨를 고용할 사업장이 자발적으로 나타나길 바랬다. 고용부 관계자는 “조속히 취업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며 “해당 권역에서 1개월 동안 일자리 알선이 없으면, 다른 권역으로 알선 지역을 넓히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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