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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인터넷銀' 규제 피해 日로...'100대 핀테크' 韓 달랑 2곳

[빅테크發 금융빅뱅]

<하>혁신금융 '싹' 자르는 규제

행정편의주의적 규제 여전해 대형 IT기업 금융진출 '발목'

대주주 적격심사도 지지부진...핀테크지수 페루에도 밀려

"선수들 뛸 기회 박탈 안돼...정부, 과감한 규제혁신 나서야"





“관(官)의 힘이 막강한 일본에서도 인터넷은행 설립을 준비 중인 네이버가 한국에서는 인터넷은행에 도전하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금융업에 진출한다고 합니다. 그만큼 우리나라는 금융업에 대한 규제가 심하다는 방증 아니겠습니까.”

지난달 31일 네이버가 내년에 통장을 출시하며 금융업에 뛰어들겠다고 선언하자 12일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이같이 평가했다. 정부의 힘이 강해 ‘규제 왕국’으로까지 불리는 일본뿐 아니라 대만·태국 등에서도 인터넷은행 출범을 추진하는 네이버가 한국에만 도전장을 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네이버가 일본·대만 등에서 메신저 ‘라인’을 통해 탄탄한 기반을 구축하고 있고 국내에서는 카카오에 한발 늦어 굳이 인터넷은행의 필요성을 못 느꼈을 수 있지만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금융업에 대한 과도한 규제라는 이야기다.

대형 정보기술(IT) 기업들이 금융업에 진출하는 ‘빅테크발(發) 금융 빅뱅’이 벌어지고 있지만 당국의 ‘행정편의주의’적인 규제가 여전해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물론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다. 카카오뱅크 등 인터넷은행 인가로 영국 경제주간 이코노미스트지의 말마따나 온라인 송금을 위해 마흔 번의 클릭과 네 번의 비밀번호 입력을 하던 시대에서 비밀번호 한 번만 입력하면 되는 시대가 도래했다. 하나의 은행 애플리케이션만 있으면 모든 계좌의 업무를 볼 수 있는 오픈뱅킹이 시작됐고 최대 4년간 금융 관련 규제를 면제해주는 혁신금융 서비스도 속속 지정되고 있다.

하지만 국제비교를 하면 갈 길이 멀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언스트영이 평가한 핀테크 도입지수를 보면 우리는 지난 2017년 32%에서 올해 67%로 두 배 이상 뛰기는 했지만 87%로 공동 1위를 차지한 중국·인도에 크게 뒤졌다. 82%의 러시아·남아프리카공화국, 75%의 페루 등에도 밀려 11위에 그쳤다. 우리만 놓고 진전됐다고 샴페인을 터뜨릴 때가 아니라는 의미다. 조사는 27개국 2만7,000명을 온라인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세계 핀테크 기업 순위를 봐도 우리의 위치를 여실히 알 수 있다. 미국 회계·컨설팅 회사 KPMG가 선정한 ‘2019년 글로벌 100대 핀테크 기업’에 우리는 2개 기업만 이름을 올렸다. 조사는 혁신성·자본조달·다양성 등을 바탕으로 한 50대 선도기업과 새로운 핀테크 기술로 혁신을 추구하는 50대 신흥기업들로 구성돼 있는데, 토스가 선도기업 29위에 올랐고 해외송금 기업 ‘모인’이 신흥기업에 포함되는 데 그쳤다. 중국 후룬연구소에 따르면 기업가치 1조원 이상인 유니콘 기업 중 한국 핀테크 업체는 토스가 유일한 반면 중국은 22곳, 미국은 21곳에 달했다.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은 “결국 당국이 규제권한을 과감하게 내려놓지 않는 게 영향을 미친 것 아니겠나”라고 평가했다. 대주주 적격성 심사가 반년 넘게 중단돼 사실상 모든 업무가 스톱된 케이뱅크가 대표적이다. 오 회장은 “인터넷은행이란 독과점 성격이 있을 수밖에 없는 정보통신기술(ICT) 산업과 금융이 융합하는 것인데 여기에 공정거래법을 들고 와 심사를 중단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렇지만 당국은 케이뱅크 주주들이 갹출해 유상증자를 하거나 국회에서 인터넷은행특례법 개정안이 통과되는 것만 기다리는 분위기다. 개정안은 인터넷은행 대주주 자격 심사요건에서 공정거래법·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등 금융 관련 법령을 제외한 법 위반 전력을 삭제하는 것을 골자로 하며, 국회 정무위 법안소위는 오는 21일 회의를 열고 개정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카카오 역시 카카오뱅크 지분을 34%까지 늘리기 위해 대규모 증자를 추진해왔지만 대주주 적격성 심사에 1년간 발이 묶였다가 법제처 유권해석 등을 거치고 나서야 7월에 겨우 성공했다. 카카오는 황금 같은 시간을 당국만 바라보며 흘려보낸 꼴이 됐다.

당국이 금융권 채용에 간섭하는 것도 문제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혁신을 위해서는 인재가 필수적인데 당국이 채용 방식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며 결과적으로 천편일률적인 사람만 채용하는 결과를 낳는 것은 잘못”이라며 “물론 금융권 채용비리 등의 문제가 불거진 탓도 있지만 혁신을 위해 한발 물러서는 게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핀테크 기업 자격에 대한 규제가 투박한 것도 한계로 지목된다. 예를 들어 창업 단계의 영세한 핀테크 업체들은 금융업에 적용된 수억~수백억원의 자본금이 있어야 자격요건을 충족해 업을 영위할 수 있다. 시작 단계부터 자격이 안 돼 싹이 잘리는 경우가 많아질 수 있는 것이다. 이에 금융업무를 잘게 잘라 핀테크 기업이 필요한 업무와 관련된 자격만 갖추면 사업을 할 수 있게 세분화하는 ‘스몰라이선스’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교수(전 금융연구원장)는 “정부가 문제 발생 시의 비판·책임이 두려워 아예 선수들이 뛸 기회조차 박탈해서는 안 된다”며 “부작용만 걱정하기보다는 플러스 요인도 감안해 더 과감한 규제혁신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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