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오후 4시~오후 5시 30분 사이 기획재정부 출입기자단에 두 통의 문자 메시지가 날아들었습니다. 바로 다음날 배포되는 ‘2019년 8월 경제활동인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결과’에 대한 브리핑에 통계청장과 기획재정부 1차관, 고용노동부 차관이 총출동한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브리핑 장소 역시 원래 알려진 세종청사 대신 서울청사로 바뀌었다는 얘기도 함께 공지됐습니다.
당장 기재부 기자실은 웅성웅성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8월 근로형태별 부가조사에 대한 자료는 해마다 이맘때 배포됐으나 보통은 통계청의 담당과장이 브리핑을 해왔는데 갑자기 통계청의 수장은 물론 기재부·고용부 차관까지 나선다니 놀랄 수밖에요. 무언가 석연치 않은 결과가 나온 것이 분명하다는 예측들도 속속 나왔습니다. 이 예측이 옳다면 ‘비정규직 제로’를 일자리 대책의 최우선 과제이자 슬로건으로 내세운 문재인 정부에게는 심각한 타격이 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리고 다음날 오전 9시. 자료가 배포되고 브리핑이 시작됐습니다. 예측대로 올해 8월 기준 비정규직 근로자는 748만1,000명으로 1년 전과 비교하면 무려 86만7,000명이나 늘어나 있었습니다. 전체 임금 근로자 중 비정규직이 차지하는 비중은 36.4%로 12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었습니다. 반면 정규직 근로자는 1,307만8,000명으로 35만3,000명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난데없이 강신욱 통계청장은 브리핑을 통해 “올해 3월과 6월에 실시한 병행조사를 통해 기존과 달리 ‘고용 예상 기간’을 세분화한 질문을 추가함에 따라 과거 부가조사에서 포착되지 않은 기간제 근로자가 35만~50만명 추가로 확인됐다”며 “이번 부가조사와 작년 결과를 증감으로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국제노동기구(ILO)가 25년 만에 개정한 종사상 지위분류 기준을 적용하기 위한 조치였다는 설명도 뒤따랐습니다. 일자리 대책을 설계하는 기본 토대가 되는 국가 통계와 관련해 사실상 ‘시계열 단절’을 정부가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죠. 강 청장은 “올해 3월부터 시작한 병행조사는 국회 업무보고를 할 때 이미 예정돼 있었다”고 밝혔지만 통계청은 이에 대한 근거 자료를 명확히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소득주도성장’ 기조의 근본 취지를 허물어뜨릴 수 있는 결과가 예상되자 이를 감추기 위해 조사 방식 변경이라는 ‘꼼수’를 쓴 것 아니냐는 의혹들이 제기됐습니다. 범야권의 대표적인 경제 전문가이자 지난 대선 후보이기도 했던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은 “3·6월에 ILO 기준으로 조사한 것이 8월 조사에도 영향을 미쳐서 비정규직 숫자가 급증했다는 주장”이라며 “정말 국민을 바보로, 원숭이로 알고 조삼모사(朝三暮四)로 국민을 상대로 정부가 사기를 치는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논란이 일파만파로 확산하자 통계청은 이틀 후인 10월 31일 오후 4시 예정에 없던 긴급 브리핑을 다시 열었습니다. 병행조사에 대한 구체적인 배경 설명과 함께 새롭게 포착했다는 35만~50만의 산출 근거를 설명하기 위한 자리였습니다. 그럼 이날 브리핑에서 오고 간 문답을 중심으로 이번 비정규직 급증 통계의 쟁점을 짚어보겠습니다.
근로형태별 부가조사 결과를 놓고 온갖 논란이 쏟아지자 황덕순 청와대 일자리수석은 “과거 (조사의) 질문이라면 정규직으로 조사됐을 사람이 이번에는 비정규직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는데요. 이에 대해 통계청 측은 “100% 옳은 팩트는 아니다”라며 사실상 반박했습니다.
통계청 관계자는 “35만~50만이 모두 다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이동했다고 말하는 것은 무리가 많다”며 “기간제는 아니지만 시간제 근로자, 비전형 근로자 등 또 다른 비정규직 형태에서 비정규직으로 이동한 경우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특히) 임시·일용직에서 교차가 많이 이뤄졌다”고 재차 확인했습니다.
그렇다면 ‘새롭게 포착했다’는 35만~50만이라는 숫자 자체는 의심의 여지 없이 정확한 것일까요. 여기에도 불명확한 구석은 여전히 많습니다. 통계청은 올해 3~8월 사이 고용 계약 형태와 관련해 ‘비기간제’에서 ‘기간제’로 수정한 근로자를 합산한 다음 2017년 같은 기간과 비교해 추정한 숫자가 35만~50만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통계청 관계자는 “1년이 지나면 표본에 50%의 손실이 생긴다”며 “50%가 소실됐을 때 나머지 50%가 동일한 모습으로 존재한다는 가정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며 “표본이 손실되면 (100%) 정확한 비교를 할 수 없다는 지적에는 동의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흔들리지 않는 ‘원 넘버’를 제시하면 논란이 없을 텐데 35만~50만처럼 ‘레인지’가 넓은 숫자를 추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점도 인정했습니다.
이와 함께 기간제 근로자의 추세를 보면 세금을 투입한 단기 노인 일자리 사업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는 점도 분명해집니다. 전년 대비로 올해 2월 25만8,000명이 증가한 기간제 근로자는 병행조사를 처음 실시한 3월 54만5,000명으로 늘어난 뒤 병행조사를 하지 않은 4월(56만2,000명), 5월(58만8,000명)에도 그 추세가 이어졌습니다. 통계청 관계자는 “지난 2월에 시작한 노인 일자리나 숙박 음식업, 보건·복지·서비스업에서 유입이 있어 기간제나 시간제 근로자가 늘어났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첫 브리핑 당시 김용범 기재부 1차관도 “가장 큰 틀에서는 비정규직이 늘어난 이유는 조사기법상 특이요인”이라면서도 “재정 일자리 사업, 서면 근로 계약서 작성 등 제도나 관행 개선 요인 등도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석연치 않은 부분이 넘쳐나지만 시끌벅적한 기간제 통계 논란이 가리키는 방향은 분명합니다. 새롭게 늘어난 비정규직 근로자가 50만이든 87만이든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 노동 시장을 경직시키는 정책들이 일자리의 질을 크게 떨어뜨리고 있다는 것을 청와대와 정부가 받아들여야 할 시점이 왔다는 사실입니다. 이 말은 곧 이제 임기 반환점을 도는 문재인 정부가 전문가들의 지적에 귀를 열고 정책 궤도의 대대적인 수정을 검토해야 한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더불어 이번처럼 국가 통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조사 방식이나 제도의 개편이 있을 때는 국민들이 의심 없이 납득 가능한 설명을 내놓아야 흔들리는 통계의 신뢰도도 다시 끌어올릴 수 있을 겁니다. /세종=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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