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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日 동시다발 '삼성 죽이기'...위기 탈출구가 없다

'비메모리 1등' 의지 다졌지만

日 '포토레지스트' 수출제한에

파운드리 공장 운영 걱정할 판

위기상황 오너 역할 절실한데도

검찰은 몰아가기식 바이오 수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7일 오후 일본 정부의 대(對)한국 수출 규제와 관련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서울 김포공항을 통해 출국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4월 문재인 대통령은 삼성전자의 화성 캠퍼스 극자외선(EUV) 건설 현장을 찾았다. “비메모리를 키워 세계 시장을 석권해달라”는 문 대통령의 당부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확실히 1등을 하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하지만 이날 만남 이후 2개월 남짓 지난 11일 현재. 삼성은 비메모리 사업의 중추인 파운드리(위탁제조) 공장 운영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일본 정부가 삼성 파운드리 경쟁력의 핵심인 EUV 공정에 쓰이는 ‘EUV용 포토레지스트’의 수출 제한에 나섰기 때문이다.



이번 조치 직전만 해도 삼성 파운드리는 IBM·엔비디아·퀄컴·인텔 등 콧대 높은 대형 고객과 잇따라 거래를 텄다. 그야말로 파죽지세였다. 그러나 대체재가 없는 EUV용 포토레지스트가 금수 조치 되면 어렵사리 잡은 이런 메이저 고객사들은 떠날 수밖에 없다. ‘2030년 비메모리 1위’를 위해 10년간 133조원을 투자하겠다는 로드맵도 무용지물로 전락한다. 이 부회장이 10일 청와대 회동을 건너뛰면서까지 일본 현지에서 재계 유력 인사들을 백방으로 접촉한 것도 이런 절박감 때문이 아니겠느냐는 게 재계의 관측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한국과 일본이 ‘삼성 죽이기’에 공조하는 모양새인데 이 부회장만 동분서주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삼성이 직면한 현실은 사면초가에 가깝다. 현재(메모리반도체, 스마트폰 및 가전)와 미래(비메모리·바이오 등)를 대표하는 사업이 모두 위기에 휩싸여 있다. 당장 내년 상반기 이후로 업황 회복 시점이 늦춰지고 있는 반도체 부진 탓에 삼성의 올 2·4분기 영업이익은 사실상 5조원대로 떨어졌다. 메모리도 일본의 수출 규제가 장기화하면 마이크론·도시바 등에 추격을 허용할 수 있다. 경제단체의 한 고위 임원은 “이 부회장이 미중 무역분쟁이라는 미증유의 사태를 맞아 일본의 5세대(5G) 이동통신 시장 등에서 비즈니스 기회를 만들기 위해 굉장히 공을 많이 들였던 것으로 안다”며 “이런 노력이 한일 간 정치 문제로 수포로 돌아갈 가능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그는 “역으로 보면 급한 불(소재 수출 제한)을 끄기 위해서라도 오너의 역할이 더 절실해졌다”고 지적했다.



그런 맥락의 연장선에서 제조업 르네상스의 한 축인 바이오 분야 대표 기업인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한 사정 당국의 파상공세는 ‘정책 리스크’에 기반한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분식회계와 관련한 정부의 갈지자 행보에 일각에서는 “금융당국의 판단이 흡사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같다”고 비꼬기도 한다. 재계의 한 임원은 “바이오 산업은 결국 속도”라며 “고삐를 쥐고 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금융당국이 세 번에 걸쳐 판단을 바꾸며 바이오 대표 기업에 ‘분식회계’라는 멍에를 씌우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빚어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특히 1년도 훌쩍 넘기고 있는 수사 기간도 문제지만 사건의 본질을 ‘분식회계’에서 ‘승계 이슈’로 변질시키는 데 대한 재계 반발도 크다. 삼성 내부는 횟수를 헤아리기 힘들 정도의 압수수색으로 이미 쑥대밭이 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속된 임직원만 전자와 바이오로직스 등에서 여덟 명에 이른다. 특히 삼성전자 등 전자 계열사의 협업과 미래 사업을 챙기는 사업지원 태스크포스(TF) 소속 임원들도 구속되면서 미래 준비 업무가 마비된 상태다. 그 결과 바이오 산업의 경쟁력 평가에서 한국은 올해 26위(사이언티픽 아메리칸 월드뷰 기준)로 3년 전보다 두 단계 내려앉았다. 반도체 업계의 한 임원은 “최근 이 부회장이 물산·엔지니어링 등 삼성 계열사를 일일이 챙기고 10년 뒤를 장담할 수 없다는 발언을 내놓은 것도 이런 삼성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짚었다.

재계에서는 정치권을 성토하는 분위기마저 감지된다. 정치가 경제를 도와주기는커녕 되려 일본의 경제 보복만 초래했다는 것이다. 최근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이제 정치가 경제를 좀 놓아줘야 할 때”라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지기도 했다. 삼성 안팎에서는 이 부회장의 리더십 발휘를 통해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여기에는 비상시국에 구심점마저 흔들리면 진짜 위기가 초래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담겼다. 가뜩이나 삼성은 노조 설립 방해건, 바이오 분식회계 관련 증거인멸 수사, 다스 관련 소송 등으로 비즈니스 본연에 집중하기조차 힘든 환경이다. 재계의 한 임원은 “정부든, 사정 당국이든 생각이 있다면 무역분쟁에 일본 수출 규제까지 겹친 마당에 이를 돌파할 리더십마저 마비시키는 일을 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른 관계자도 “삼성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 크고 삼성은 ‘약속 이행’을 대외적으로 선언했지만 ‘발이 묶여 있는’ 삼성이 과연 지금의 난국을 극복하고 4차 산업혁명기의 대한민국 경제를 이끌어줄지에 대해 여러 우려가 있다”며 “그 어느 때보다 기업인들에게 힘을 실어줘야 하는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이상훈기자 sh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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