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이 신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에 보조를 맞추는 데 1·4분기에만 5,000억원이 넘는 돈을 쏟아부은 것으로 드러났다. 같은 기간 한전은 6,299억원의 영업손실을 내며 ‘어닝 쇼크’를 기록했다. 경영난 속에 각종 정책 비용까지 불어나자 전기료 인상 등 대책을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가 완강하게 반대하고 있어 한전의 속앓이가 깊어지고 있다.
5일 곽대훈 자유한국당 의원실과 한전에 따르면 지난 1·4분기 한전의 신재생공급인증서(REC) 구입 비용은 5,262억원으로 집계됐다. 1·4분기 기준 사상 최대치로 같은 기간 한전이 기록한 영업손실(6,299억원) 규모에 견줄 수준이다. 한전 안팎에서는 올해 REC 구매비용이 2조원을 넘을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REC 구매비용은 정부가 지난 2012년 신재생에너지를 확대 공급하기 위해 도입하면서 발생하기 시작했다. 500㎿급 이상의 대형 발전사는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비율(RPS)만큼 재생에너지로 전기를 생산해야 하는데, 이를 지키지 못할 경우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로부터 REC를 구입해야 한다. 의무 할당량 미달분만큼을 돈으로 메우는 셈이다. 한국수력원자력 등 한전 산하 6개 발전사 등이 지급한 비용은 한전이 최종적으로 보전해준다.
RPS 비율이 매년 늘어나도록 설계돼 있는 만큼 REC 구매비용은 맞물려 불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2019년 6%인 RPS 비율은 2024년 10%까지 늘어날 예정이다.
한전 앞으로 청구된 정책 비용은 이뿐만이 아니다. 당장 누진제 개편안에 따라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정부가 누진제 개편을 위한 복수의 시나리오를 공개한 가운데 어느 안이 채택되더라도 2,000억원대(2018년 기준)의 비용이 발생한다. 정부는 추가 비용을 한전이 감당하게 하되 일부는 정부 자체 예산으로 부담한다는 입장이지만, 예산안이 국회 심의를 넘지 못하면 모든 비용을 한전이 떠안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외에 미세먼지 감축을 위해 석탄화력발전의 의존도를 줄이고자 석탄 개별소비세를 인상한 것도 한전 입장에서는 악재다.
정책 비용은 늘어나고 있지만 정작 한전의 수익을 개선할 방안은 마련되지 않고 있다. 전력 구입비를 줄이기 위해 원전 등 저렴한 에너지원의 발전 비중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안전문제에 발목이 잡힌 원전 이용률은 여전히 예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올 1·4분기 원전 이용률은 75.8%로 지난해(평균 65.9%)보다 올랐지만 2014~2016년의 평균 85%에는 한참 못 미친다.
한전은 전기료를 조정하는 방안을 거듭 요구하고 있으나 정부는 “전기료 인상 계획은 없다”며 선을 긋고 있다. 에너지업계의 한 관계자는 “전기를 파는 금액은 고정돼 있는데 이리저리 나가는 돈만 늘어나니 손해가 커질 수밖에 없다”며 “한전이 전기료 인상이 불가피하다고 요구하는데도 ‘에너지 전환 정책’ 때문에 전기료가 올랐다는 반발을 들을까 정부가 관련 논의를 꺼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논의가 멈춰 있는 동안 한전의 경영 상황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지난해 한전은 6년 만에 적자로 전환한 데 이어 올 1·4분기에도 6,299억원의 적자를 봤다. 부채는 3월 기준 1년 전보다 10조원가량 늘어나 120조원을 웃돈다. 곽 의원은 “우량 공기업이던 한전이 2년 만에 부실 공기업이 돼버렸다”며 “지금이라도 각종 정책에 따른 전기요금 인상 가능성을 국민들에게 솔직히 고백하고 동의를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김우보기자 ub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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