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오롱생명과학의 유전자 관절염 치료제 ‘인보사’가 품목허가 취소에 이어 환자와 주주가 제기한 각종 소송전에 휩싸이면서 과거 ‘바이옥스’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제조사가 자진해서 판매를 중단한 뒤 보건당국이 허가를 취소하고 이후 대규모 소송전에 휘말렸다는 점에서 판박이라는 지적이다.
‘바이옥스 사태’는 지난 19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국계 다국적 제약사 MSD는 기존 염증 치료제의 최대 단점이었던 위장 장애를 없앤 합성의약품 신약 바이옥스를 선보였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신속한 심사를 마친 바이옥스는 출시되자마자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다. 2003년에는 전 세계 80여개국에 판매되며 3조원에 가까운 매출을 올렸다.
소염진통제로 출시된 바이옥스는 이후 관절염 치료제로까지 치료질환을 확대하며 승승장구를 이어갔다. 2004년에는 바이옥스를 복용하는 환자가 전 세계 8,400만명에 달하면서 MSD 전체 매출의 10%를 넘어서는 간판 제품으로 부상했다. ‘아스피린’ 이후 가장 획기적인 염증 치료제로 평가받을 정도로 수많은 환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거침없는 질주를 이어가던 바이옥스의 신화는 그해 MSD가 돌연 판매 중단을 선언하면서 악몽으로 변한다. 바이옥스의 치료질환을 결장암으로 확대하기 위해 임상시험을 진행하던 중 장기간 복용하면 심장마비와 뇌졸중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뒤늦게 발견한 것이다. 이듬해 FDA는 바이옥스의 허가를 전격 취소했고 이후 환자들의 대규모 집단소송이 이어졌다.
소송에서 잇따라 패한 MSD는 결국 7조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배상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법원은 MSD가 바이옥스의 부작용을 일부 알고 있었지만 이를 뒤늦게 발표한 것이 중대 과실이라고 지적했다. FDA는 바이옥스를 장기간 복용한 환자를 추적한 결과 최소 2만7,000명 이상이 바이옥스의 부작용인 심장질환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MSD는 이후 바이옥스의 부작용을 개선한 ‘알콕시아’를 글로벌 시장에 출시했지만 여전히 미국에서만 허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인보사가 자칫 바이옥스의 전철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내놓는다. 이미 출시한 의약품의 문제점을 제조사가 뒤늦게 발견해 판매를 중단했다는 점에서 출발점이 같고 정부의 허가 취소와 대규모 소송전으로 이어지는 과정까지 동일해서다.
다만 인보사의 경우 투약 인원이 훨씬 적고 식약처 등 보건당국이 유해성은 없다고 판단한 점 등이 달라 배상 규모를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하지만 과거 MSD가 ‘바이옥스’로 인한 기업 신뢰를 완전히 회복하기까지 10년 넘게 걸렸다는 점에서 코오롱도 이에 못지않은 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이지성기자 engin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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