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수표처럼 복잡해지는 청약 제도 탓에 아파트 당첨자들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부적격자로 전락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현 청약제도는 청약자 본인이 부적격 여부를 검증해야 되는 구조이다. 이런 가운데 뒤늦게 청약 부적격 통보를 받은 당첨자가 선정과정 및 관리 부실의 책임을 물어 시행사와 금융결제원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핵심은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이 수십 차례 개정되는 과정에서 관계 행정기관이 제대로 된 법 해석과 적용을 하지 못하면서, 그 피해를 고스란히 아파트 당첨자에게 떠넘기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이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2017년 서울의 모 아파트 청약에서 1순위로 당첨된 A 씨는 최근 시행사로부터 공급계약 해제 통보를 받았다. A씨가 16년 전에 구입한 나대지(건물이 없는 대지)가 관리처분계획인가를 받았기 때문에 1순위 청약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였다. 해당 부지는 몇 년 전 관리처분계획 인가가 나긴 했지만 아직 재개발 사업은 진척이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주택법과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 등 관련 조항에 따르면 A 씨는 엄연히 ‘과거 5년 내 다른 주택의 당첨자가 된 자’에 해당한다. 처음부터 1순위 자격이 없었다는 뜻이다.
문제는 A 씨와 시행사 모두 중도금을 낼 때까지도 이 같은 사실을 몰랐다는 점이다. A 씨는 계약 체결 후 1년 2개월여가 지나고 3차 중도금까지 낸 상태에서 시행사로부터 해지 통보를 받았다. 청약접수와 입주자선정업무를 대행하는 금융결제원이 시행사에 재당첨 제한자 명단 통보를 1년 2개월이 지나서야 했기 때문이다. A 씨는 “금융결제원이 운영하는 아파트투유 사이트에서 한 번도 청약·당첨 제한사항을 확인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A 씨는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공급계약 해제를 막지 못했다. 심지어 시행사는 A 씨에게 귀책사유가 있다며 이미 납부된 5,700여 만 원의 계약금을 돌려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A 씨는 이 같은 결정에 반발해 해당 시행사와 금융결제원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A 씨를 대리하는 문성준 한유 변호사는 “관계 행정기관 및 시행사의 더 큰 잘못으로 초래된 사태에 대해 단지 법률을 정확히 알지 못한 잘못밖에 없는 A 씨와 같은 청약자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사례는 A 씨만의 일이 아니다. 주택청약 제도가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뀌면서 예비청약자들로서는 정확한 청약 자격, 선정 방식 등을 다 파악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특히 청약 단계에서 관계기관이 이를 걸러내지 못하고, 법률적 책임이 발생하더라도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지우게 된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은 1978년 법이 제정된 후 40년 동안 무려 138차례나 개정됐다. 내용이 복잡할 뿐 아니라 국토부가 유권해석을 내려야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금융결제원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청약 관련 내용이 복잡해서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은 것은 알고 있다”며 “정부에서 청약 관련 자격요건 정보를 사전에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검토하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진동영기자 j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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