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지지 않는 제 사진과 평생 살아가겠죠. 깊은 슬픔 속에 평생 살아야 될지도 모르겠어요. 그렇다고 제 삶 포기하고 싶지 않아요. 용기 내 잘 살아보려고요.”
비공개 촬영회를 통해 찍은 사진을 유출하고 유튜버 양예원 씨를 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최모(46)씨가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서울서부지법 형사4단독 이진용 판사는 ‘강제추행·촬영물 유포’ 혐의로 기소된 최씨에게 징역 2년6개월에 8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를 선고했다. 5년간 아동 관련 기관 취업 제한도 명령했다.
이날 재판에서는 그간 논란이 됐던 강제추행 혐의 적용 여부가 쟁점이 됐다. 최씨 측은 양씨 진술의 신빙성을 문제 삼은 바 있다. 그러나 재판부 판단은 달랐다. 이 판사는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진술하면서 일부 사실과 다르게 했다는 이유만으로 신빙성을 부정할 수 없다”며 “추행 관련 진술은 구체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비합리적이거나 모순되는 부분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가 추행당한 이후에도 스튜디오 측에 연락한 것이 이례적이라고 피고인 측이 주장하지만, 피해자에 따라 (대응방식은)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하면서 “피해자는 이미 신체가 드러난 사진이 찍혔다”고 강조했다. 양씨 측 변호인은 이날 재판에 앞서 “2018년 지켜본 사건 중 양씨 정도의 진술 정확성을 가진 사건은 드물다”며 “진술의 일관성과 구체성이 있기에 가해자 측 혐의가 인정될 것으로 본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재판부는 사진 유포로 인해 양씨가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를 입은 점을 문제 삼았다. 이 판사는 “사진을 인터넷을 통해 유포해 공공연하게 전파됐고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가 발생했다”며 “사진 전파를 예상할 수 있었고, 피해자에게 용서받지 못해 이에 상응하는 처벌이 필요하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최씨의 실형 선고가 내려진 뒤 양씨는 법원 앞에서 심경을 전했다. 담담한 표정으로 취재진 앞에 선 양씨는 감정이 복받치는 듯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양씨는 “재판 결과가 제 잃어버린 삶들을 되돌려 줄 수는 없지만 솔직한 심정으로 조금 위로는 되는 것 같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제가 처음 고소하러 나섰을 때 관계자분은 가해자 처벌이 어려울 수도 있겠다고 했다”며 “그럼에도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건 ‘네가 살아야 엄마도 산다’던 응원이었다”고 덧붙였다.
양씨는 2차 피해에 대한 우려도 내보였다. 양씨는 “1심 선고가 끝은 아니다”며 “여전히 저를 몰아세우는 사람들과 맞서고 지워지지 않는 제 사진과 평생 살아 가야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다고 제 삶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며 “용기 내서 잘 살아보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악플러에 대한 엄정 대처도 예고했다. 양씨는 “컴퓨터 앞에 앉아서, 휴대폰 들고서 저와 가족까지 도마 위에 올려놓고 난도질한 악플러 모두에게 법적 조치를 내릴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어 “시작할 때부터 다시는 물러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며 “내 인생을 다 바치겠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성범죄 피해자들에게 응원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양씨는 “성범죄에 노출돼 숨어서 지내는 분들 정말 안 숨으셔도 된다”며 “잘못한 게 없으니 세상에 나오셔도 되고 용기내도 된다”고 말했다.
비공개 촬영회 모집책인 최씨는 2015년 7월 서울 마포구의 한 스튜디오에서 양씨의 신체가 드러난 사진을 촬영하고 2017년 6월께 사진 115장을 지인에게 제공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최씨는 2016년 9월부터 이듬해 8월까지 13차례에 걸쳐 모델들의 동의 없이 노출 사진을 배포한 혐의와 2015년 1월과 이듬해 8월 모델 A씨와 양씨를 추행한 혐의도 받는다. 최씨는 그간 재판과정에서 “사진 유출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고 뉘우친다. 피해자께 진심으로 사죄드리고 싶다”면서도 “추행한 사실은 없다”고 주장해왔다.
양씨 측 변호사는 “이 사건은 곧 잊히겠지만 양씨의 사진은 항상 돌아다닐 것”이라며 “피고인이 자기 잘못을 가리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엄벌을 촉구했다.
앞서 지난해 5월 양씨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저는 성범죄 피해자입니다’라는 제목의 글과 관련 동영상을 올려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면서 이번 사건이 알려졌다. 스튜디오를 운영한 피의자는 수사를 받던 중 스스로 목숨을 끊어 ‘공소권 없음’ 처리됐다.
/서종갑기자 gap@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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