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도용이란 주로 주류 문화가 비주류 문화의 전통이나 관습·언어·노래 등을 베끼는 현상을 말한다. 물론 문화 간 상호작용은 필요하다. 문제는 다른 문화의 결과물들을 그냥 베낄 때 나타나는 몰이해다. 영국의 해리 왕자는 2003년 학교 과제물로 호주 원주민들의 벽화 등에 묘사된 도마뱀을 그린 그림을 제출한 후 호주 원주민들의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원주민의 영감을 담지 못하고 그냥 베낀 작품’이라거나 ‘우리 문화를 훔친 것’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호주 원주민 단체가 해리 왕자에게 항의서한을 보낸 것은 당연한 결과다.
문화 도용 문제가 본격화된 것은 21세기 이후 식민지나 원주민 사회가 토착 문화에 대한 자긍심에 눈을 뜨면서부터다. 자신들의 문화를 보호하고 서구 자본주의가 제멋대로 왜곡하고 남용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2007년 유엔총회가 144개국의 찬성으로 ‘원주민 권리에 대한 선언’을 채택하고 ‘원주민은 자신의 문화유산·전통지식 등을 통제·보호·개발할 권리가 있고 그에 대한 지적재산권을 유지·통제·보호·개발할 권리가 있다’고 적시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시대적 흐름의 결과였다.
미국 월트디즈니가 24년 전 상표권 등록을 했던 애니메이션 ‘라이온 킹’에 나오는 ‘하쿠나 마타타(걱정 말라)’라는 스와힐리어 대사가 문화 도용 논란에 휩싸였다. 짐바브웨와 케냐·탄자니아 등 아프리카 국가들이 ‘디즈니 상표권은 탐욕의 결과물이며 스와힐리어를 사용하는 이들과 아프리카 전체에 대한 모욕’이라며 취소 청원 운동을 벌이고 있다. 삶의 애환과 지혜가 깃든 자신들의 문화를 단순한 흥밋거리로 전락시키지 않으려는 이들의 노력이 결실을 거둘 수 있을지 궁금하다. /송영규 논설위원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