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 니콜라이 차우셰스크로 유명한 루마니아는 동유럽 발칸반도에 위치한 라틴계 공화국으로 수도는 부쿠레슈티(Buchares)다. 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체코·헝가리 등 동유럽 관광 패키지가 활성화되긴 했지만 아직 이 곳은 우리에게 다소 낯선 땅이다. ‘로마의 땅’이란 나라 이름은 106년 로마에 정복되고 유래됐다. 이후 독일·러시아·터키 등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숱한 침략을 당한 아픈 역사를 품고 있다.
면적은 23만 8,391㎢로 우리나라보다 2배 이상 넓다. 국토 중앙부에 커다란 산악지대가 형성돼있어 저비용 항공이 발달했고 대중교통 체계도 잘 잡혀있다. (다만 기차가 다소 낡고 ‘집시의 호객 행위’ 등이 있어 일부 여행객은 강한 불평을 하기도 한다.) 또 우버가 보편화돼 택시의 ‘바가지 요금’ 문화도 많이 개선됐다고 한다.
EU 회원국이지만 자체 화폐 레우(Leu·복수형은 레이)를 쓴다. 1레우는 300원 안팎이다. 현지 맥주 한 캔이 5레이, 담배 한 갑이 8~10레이, 1.5리터 생수가 2~3레이여서 전반적인 생활 물가는 한국보다 조금 낮은 편이라고 전한다. 또 현지 전압도 220v로 국내와 같아 따로 어댑터를 챙기지 않아도 된다. 헨리코안더 공항으로 가는 직항 항공편은 없지만 터키·러시아항공 등이 100만원대 아래 1회 경유편을 제공하고 있다. 이외에도 대한·아시아나항공은 물론 루프트한자·에어프랑스 등도 비교적 저렴한 항공편을 운항 중이다.
미국 펜타곤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행정건물인 인민궁전은 14개 층에 3,200여 개의 방으로 구성된다. 1971년 평양을 다녀온 차우셰스크가 북한 인민대학습당에 매료돼 지었다고 한다. 이를 세우고자 시내 문화유산의 20%를 무너뜨렸고 6년간 GDP의 30%를 집어삼킨 ‘괴물’이다. 독재자의 과시욕이 나라 살림을 뒤흔든 꼴이지만 이젠 도시의 가장 큰 명소가 됐으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지금은 국회의사당으로 쓰이고 박물관·미술관·편의시설 등을 채워 ‘공산주의 체험코스’로도 활용되는데 내부 관광을 하려면 미리 예약해야 한다.
철권을 휘두른 독재자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루마니아 온 국민이 사랑하는 음식이 있다. ‘미티데이’가 그 주인공인데 우리의 떡갈비와 매우 흡사하나 고기의 종류와 부위가 다르다고 한다. 대부분 유럽 음식이 그렇듯 고기의 간이 세고 향신료가 들어가 향도 강하다. 이와 곁들여 ‘추이카(tuica)’라는 술을 마시는 게 현지 전통 방식이라고 한다. 추이카는 자두로 만든 브랜디의 일종이다. 루마니아에선 한 해 생산된 자두의 75%가량을 추이카를 담그는 데 쓴다고 하니 과연 ‘국민술’이라고 부를 만하지 않을까.
부쿠레슈티 시내 ‘카루 쿠 베레(Caru cu bere)’는 차우셰스크부터 현 대통령까지 단골인 식당으로 현지에서 높은 인기를 자랑한다. 자자한 명성 덕에 주변 다른 음식점에 견줘 다소 가격이 비싼 편이지만 한국 내 비슷한 분위기의 고급 레스토랑보단 훨씬 저렴하다고 한다.
부쿠레슈티 북쪽으로 125km 올라가면 중부 휴양 도시 시나이아에 닿는다. ‘카르파티아의 진주’라 불리며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건축물을 뽐낸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았다는 시나이 산에서 지명이 유래됐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엔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으로 꼽히는 루마니아 국보 1호 펠레슈(Peles)성이 있다.
1783년 루마니아 왕국 초대 국왕 카를 1세의 여름 별궁으로 짓기 시작해 100년에 걸쳐 완성됐다. 이 성엔 전력 발전소가 들어서 유럽 최초로 전기 조명과 중앙난방을 사용했다. 성 안에는 모두 170개의 방이 있는데 금·은으로 만든 접시, 크리스털 샹들리에,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등 호화로운 보배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또 2,000여점에 이르는 유럽 미술가들의 회화가 소장돼있다.
거대한 ‘성곽의 도시’라 불리는 브라쇼브(Brasov)는 13세기 독일 이주민에 의해 건설된 곳으로 루마니아인은 시내 거주가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다 1차대전을 겪은 후 루마니아 영토로 편입됐다. 몰다비아·왈라키아·트란실바니아 세 지방을 잇는 교통·상업의 요충지로 기계공업 역시 크게 발달했다. 14~15세기 지어진 ‘검은 교회(흑성당·Black Church)’가 유명하다.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검은 교회는 1384년 짓기 시작해 1477년 완공됐다. 90여년의 세월이 걸린 만큼 압도적 위용을 자랑한다.
1689년 ‘터키전쟁’ 당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왕가 군대의 화공으로 인해 벽이 새카맣게 그을린 이후 검은 교회라 불리게 됐다. 점차 복원 작업이 진행됨에 따라 그을음을 벗겨 내고 있다고 한다. 거친 이름과는 달리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된 내부는 4,000여개의 파이프 오르간과 돌기둥으로 중후하고 화려한 모습을 자랑한다. 터키산 양탄자를 비롯한 100여년에 걸쳐 모은 중요 문화재로 채워졌다. 현재는 루터교의 회당으로 쓰이며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 30분까지 개방한다.
/김태원기자 reviv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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