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부산에서 음주운전자가 몰던 차량에 치여 의식을 잃고 뇌사 상태에 빠진 윤창호씨. 음주운전에 대한 여론이 악화하자 국회는 서둘러 이른바 윤창호법을 통과시켰다.
형량도 기존의 음주운전 3회 이상 적발시 1~3년의 징역형이나 500만~1,000만원의 벌금 조항을 음주운전 2회 이상 적발시 2~5년의 징역 또는 1,000만~2,000만원의 벌금에 처하도록 강화했다. 운전면허 정지 기준은 혈중 알코올 농도 0.05~0.10%에서 0.03~0.08%로, 취소 기준은 0.10%에서 0.08% 이상으로 하향돼 역시 강화됐다.
최근 국회는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사건 사고가 발생하고 법을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부상하면 주로 벌금형을 강화하는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여론을 잠재우고 있다.
서울 강서구 PC방 살인 사건도 마찬가지다. 국회는 심신미약자에 대한 처벌 감경 조항을 겨냥해 이 조항을 삭제하는 형법 일부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기존에는 심신이 미약한 상태에서 살인을 저지를 경우 반성하고 뉘우치는 등의 사유가 있으면 판사가 처벌을 대폭 줄여줄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감경받을 수 있는 길이 막힌 것이다.
국회는 헤어진 연인에게 보복할 목적으로 유포되는 영상물에 대한 처벌 역시 강화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은 카메라 등 기계 장치를 이용해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를 당사자의 의사에 반해 촬영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서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선고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아울러 당사자의 의사에 반해 촬영물을 유포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다스릴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주로 벌금액을 ‘찔끔’ 늘리는 형태의 법률 개정안은 또다시 치명적인 단점을 노출했다. 바로 윤창호법 개정안을 공동 발의한 이용주 민주평화당 의원이 음주운전 혐의로 300만원의 벌금형을 받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음주운전 처벌을 강화하자고 개정 법률안에 서명한 뒤 저녁에는 음주운전을 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음주운전에 대한 기준도 강화하고 벌금액도 높였다고 하지만 벌금액 자체가 주요 선진국과 비교해 낮다 보니 벌금형이 주는 범죄 억지력이 현격하게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같은 문제점으로 인해 지난 19대 국회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일수벌금제 도입을 위한 법률 개정안 발의가 이어졌다. 개인의 소득에 비례해 벌금형을 선고하는 일수벌금제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 사항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고 20대 국회가 개원한 뒤 아직 일수벌금제에 대한 논의는 전혀 이뤄지고 있지 않다. 국회가 여론이 악화하면 그때그때 땜질식으로 벌금형을 높이는 방식으로 여론을 달래는 일에 익숙해진 탓이다. 국회와 정부는 벌금형을 받고도 돈이 없어 유치장 노역으로 벌금을 탕감받는 사람들이 한 해에 3,000명 가까이 되지만 아무도 눈길 한번 주지 않는다. 법 체계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지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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