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정상회담을 통해 남북의 화해 분위기가 최고조에 이르면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에 대한 기대가 절정에 달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도 여전했던 저평가 ‘족쇄’가 이번에야말로 풀릴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다시 고개를 든다. 그러나 ‘코리아 프리미엄’이라는 샴페인을 터트리기는 너무 이르다는 회의론 역시 팽팽히 맞서고 있다. 여전히 아시아 신흥국보다 저렴한 증시를 보며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생각보다 복잡한 현상이라는 점을 확인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일 코스피지수는 14.99포인트(0.65%) 오른 2,323.45로 장을 마쳤다. 외국인과 기관이 3,100억원, 890억원씩 ‘쌍끌이’ 순매수에 나서며 지수를 끌어올렸다. 코스피 대표주인 삼성전자(005930)(2.38%), SK하이닉스(000660)(0.38%) 등 전기·전자 업종에 2,290억원의 매수세가 몰리는 ‘바이(Buy) 코리아’ 장세였다. 연구개발(R&D)비의 단계별 자산화 가능이라는 호재와 맞물린 코스피 의약업종도 이날 490억원 순매수를 기록했다. 삼성전자의 경우 오는 추석 연휴 이후 발표될 3·4분기 실적이 양호할 것이라는 전망 역시 작용했다.
남북관계 개선과 불투명한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 등을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문재인 정부가 지난해 출범하면서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될 것이라는 예상이 컸다. 실제 올해 남북정상회담 개최 계획이 발표되고 회담이 진행된 날짜에 맞춰 코스피지수는 1% 안팎의 상승률을 나타냈다. 남북이 이번 평양정상회담에서 구체적인 경제협력 분야와 시기를 공개한 만큼 그동안 ‘테마’에 그쳤던 경협 수혜가 산업 전반으로 확산할 수 있다는 기대감까지 더해졌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정부의 구상에 그쳤던 ‘한반도 신경제’가 구체화하면 한국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올해 들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핵심 원인이라는 남북관계가 개선되기 시작했지만 국내 증시의 가격은 상향 조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셜(MSCI) 한국 지수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올해 1월 8.7배에서 지난 14일 8.2배로 오히려 떨어졌다. 이 수치는 미국과의 무역분쟁으로 증시 부진에 빠진 중국(11배)을 포함해 미국의 달러화 강세로 신흥국 위기 영향권에 속한 인도네시아(13.8배), 필리핀(17.1배), 태국(14.5배)보다도 낮다.
정부가 기관투자가의 수탁자 책임(스튜어드십 코드) 등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또 다른 원인으로 꼽히는 문제점들을 해결하는 데 정책 역량을 집중했으나 효과가 미미했다는 사실 역시 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소다. 7월 오랜 논란과 진통 끝에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결정하면서 증권가는 ‘과도했던 지주회사 전반의 할인율이 축소되고 지배구조 및 오너 리스크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으나 실현 가능성은 두고 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영환 KB증권 연구원은 “지배구조 불투명과 낮은 배당성향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부추겨 왔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주목해야 할 변화의 시작”이라면서도 “단계적 시행인 만큼 당장 대단한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도리어 경영권 침해나 단기차익을 노리는 투기자본의 공격 가능성을 높여 시장 경제나 기업 자율성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증시 저평가의 원인을 반도체 쏠림이라는 산업 구조에서 찾는 분석이 나온다. 윤영교 케이프투자증권 연구원은 “반도체의 이익 집중도가 강해질수록 반도체가 흔들리면 시장 전체의 이익 감소로 이어지는 경향이 커진다”며 “한국 증시의 가치가 재조정되려면 반도체 이외의 여타 업종으로 이익 분산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업황 고점’ 논란이 제기될 때마다 반도체뿐 아니라 증시 전체가 휘청이는 사례가 최근 빈번했다. 지난달 미국계 모건스탠리는 SK하이닉스의 투자의견을 ‘비중 확대’에서 ‘비중 축소’로 변경하자 하이닉스의 주가는 5% 가까이 빠졌다. 뒤이어 모건스탠리에 골드만삭스까지 가세해 나란히 반도체 업종의 투자의견을 ‘중립’에서 ‘주의’로 내리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주가가 3% 넘게 급락했다. 삼성전자는 이후 며칠 동안 52주 신저가를 다시 쓰기도 했다. 외국계의 부정적인 리포트 하나에도 흔들릴 정도로 국내 증시가 위협에 노출된 것이다.
윤 연구원은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될 때는 반도체를 대체할 수 있는 ‘차기 주도주’의 윤곽이 잡히는 시점”이라는 전망도 덧붙였다. 결국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기존과는 다른 양상으로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증시는 당분간 관망세를 나타낼 가능성이 크다. 이 연구원은 “평양정상회담 결과로 단기적인 변화는 제한적일 것”이라며 “지금까지 남북경협에 대한 기대감은 상당 부분 반영됐다. 앞으로는 실질적인 북미관계 개선, 이를 통한 대북제재 완화 여부가 확인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양준기자 mryesandn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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