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의 천국’으로 불리던 스웨덴도 유럽에 몰아치는 극우 바람을 피해가지 못했다. 반이민·유럽연합(EU) 탈퇴를 표방한 극우 정당이 9일(현지시간) 총선에서 약진하며 유럽 사회민주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스웨덴에 파란을 일으켰다. 네덜란드·독일·오스트리아·이탈리아에 이어 스웨덴에서까지 극우 세력의 입김이 거세지면서 내년에 열리는 유럽의회 선거도 포퓰리즘으로 얼룩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스웨덴 공영방송인 SVT에 따르면 이날 총선에서 연립여당(사회민주당·좌파당·녹색당)과 야권연맹(보수당·중앙당·기독민주당·자유당)은 각각 40.6%, 40.3%의 득표율을 기록해 모두 과반 확보에 실패했다. 총 의석수 349석 가운데 연립여당과 야권연맹의 의석은 각각 144석과 143석으로 1석의 차이를 내는 데 그쳤다.
스웨덴에서 지난 1917년부터 100년 동안 부동의 1위를 달렸던 중도좌파인 사민당은 이번 선거에서 28.4%의 지지를 받아 1위 자리는 지켰지만 득표율은 4년 전 총선 대비 2.6%포인트 떨어져 100년 이래 최저로 추락했다. 사민당의 경쟁상대인 중도우파 보수당의 득표율도 3.5%포인트 떨어져 19.8%에 그쳤다. 사민당이 난민교육 강화 등 사회 통합을 강조한 반면 보수당은 덴마크와 독일처럼 정착 능력이 증명된 이민자들에게만 시민권을 부여해야 한다며 표몰이에 나섰지만 유권자들은 양측 모두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사민·보수당에서 이탈한 표심은 극우 성향의 스웨덴민주당으로 흡수됐다. 지난 총선 때 12.9%로 3위로 올라섰던 스웨덴민주당은 이번 총선에서 확고한 제3당으로 입지를 굳히며 내각 구성을 결정할 캐스팅보트를 쥐게 됐다. 2010년 의회에 첫 입성한 지 8년 만에 2위 보수당을 2.2%포인트 차로 바짝 추격하는 위협적인 성장세를 보인 것이다. 보수당마저 추월할 수 있다는 일부 여론조사의 관측에는 못 미쳤지만 중도좌파와 중도우파의 과반 확보를 저지한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존재감을 과시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임미 오케손 스웨덴민주당 대표는 선거 전 지지자들을 향해 “난민 문제에서만큼은 목소리를 내겠다”며 일전을 예고했다.
스웨덴민주당의 선전으로 당장 스웨덴은 차기 내각 구성에 상당한 차질을 빚을 것으로 예상된다. 연립여당과 야권연맹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어 중도 연립 내각 출범이 현실적으로 어려운데다 스웨덴민주당으로부터 구애를 받고 있는 보수당의 울프 크리스테르손 대표는 극우 세력과의 연립은 없다고 못 박고 있어 이마저 쉽지 않다. 영국 가디언은 전문가들을 인용해 보수당이 야권연합으로 소수 연정을 꾸리면서 스웨덴민주당에 이민 정책 발언권을 주는 대신 암묵적으로 지지를 받는 형태로 내각을 운영할 수 있다고 전했다.
한편 스웨덴민주당이 이민 정책을 좌지우지할 경우 유럽의 난민 이슈는 더욱 복잡하게 꼬일 것으로 전망된다. 2015년 한 해에만 16만3,000명의 난민을 받아들이며 EU 회원국 중 인구(1,010만명) 대비 가장 많은 난민을 수용해온 스웨덴마저 난민 거부 행렬에 동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웨덴에서는 지난해 4월 우즈베키스탄 출신 남성의 차량 테러로 5명이 숨지면서 난민에 대한 여론이 날로 악화하고 있으며 이민자 급증으로 난민에 대한 혜택이 줄어들자 기존에 정착한 난민이 신규 난민 유입을 거부하는 사태마저 벌어지고 있다.
남유럽에 국한됐던 포퓰리즘이 동서는 물론 북유럽까지 강타하면서 내년 5월에 치러질 유럽의회 선거에 대한 우려가 벌써부터 커지고 있다. 국경을 넘는 포퓰리즘 연대가 본격화하며 유럽의회마저 포퓰리즘 세력이 집어삼킬 경우 유럽 분열 움직임에 가속도가 붙을 수밖에 없다. 미 CNN방송은 “영국의 EU 탈퇴 결정과 포퓰리즘 연정의 출현 이후 유럽회의론을 잠재우려 애썼던 브뤼셀 지도자들은 스웨덴 총선 결과에 상당히 실망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창영기자 kc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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