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아들은 내일배움카드 받았는데 왜 내 아들은 안되냐”
지난달 중순께 경기 북부의 한 고용지원센터. 중년 여성의 고함 소리가 센터를 뒤흔들었다. 아들에게 내일배움카드 발급이 거절되자 어머니가 고용지원센터를 찾은 것. 여성은 한동안 난동을 부리다가 경찰이 출동한 뒤에야 집으로 돌아갔다.
취업난이 심화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의 잘못된 예산배정으로 직업훈련 현장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 실직자를 위한 내일배움카드 수요가 크게 늘었지만 배정 예산이 부족해 정부가 급기야 처음으로 발급제한에 나서 청년 구직자들의 아우성이 커지고 있다.
2일 청년 구직자와 직업훈련 업계에 따르면 내일배움카드 발급이 지난달부터 사실상 중단됐다. 내일배움카드는 고용노동부가 실업자를 위해 단기간 직업 훈련비용을 지원하는 제도다. 카드 한도는 1인당 1년 이내 200만원으로 훈련비 중 50~90%를 정부가 지원한다.
하지만 올해 정부가 수요 예측에 실패해 예산이 조기에 바닥나면서 더 이상 원활한 지원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수도권의 한 직업훈련 학교장은 “고용지원센터를 찾은 직업훈련생 20명 중 고작 3명만 카드를 발급받았다”며 “이런 일은 직업훈련 업계에 종사한 지 20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가 정부의 잘못된 수요 예측 때문에 빚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고용부 관계자는 “내일배움카드 인기가 예상보다 높아 배정받은 예산 6,795억 중 5,260억이 1~7월 사이에 집행됐다”며 “예산 부족으로 발급 건수를 제한했다”고 말했다. 정부가 카드 발급 건수를 제한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고용부에 따르면 지난달 6일 이후 연말까지 발급 가능한 내일배움카드는 총 7만7,069장으로 예산 규모는 1,500억원 가량이다.
고용부가 발급에 제한을 걸자 일선 현장에서는 아우성이 터져 나오고 있다. 내일배움카드 배정 물량이 남은 고용지원센터를 순례하듯 찾아다니는 실업자도 등장했다. 지난달 중순까지는 평균 4개 센터를 돌면 1개 센터 정도에서는 카드 발급이 가능했지만 이후에는 이마저도 거의 불가능해졌다.
발급 수량을 줄이려고 선정 기준을 까다롭게 하다 보니 취업 취약계층에 대한 역차별 논란도 있다. 고등학교를 중퇴한 후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온 문모(20)씨는 “알바 때 가입한 고용보험 이력을 근거로 카드 발급을 거절당했다”며 “고용보험 이력 없이 센터를 찾는 사람은 금수저나 돼야 가능한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또 상대적으로 형편이 어려운 방송통신대학, 야간대학 휴학생도 일반대 휴학생과 동일 기준이 적용돼 카드 발급이 제한됐다. 지난달 이전만 하더라도 일반대 휴학생과 달리 방통대·야간대 휴학생에게는 카드가 발급됐다.
청년 구직자들 사이에서는 내일배움카드 발급 거부로 ‘취업 골든타임’을 놓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번 강의 일정을 놓치면 다음 강의까지 최대 6개월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정보기술(IT) 계열 직업훈련 수강을 희망하는 A씨는 “내일배움카드가 발급되지 않아 9월에 열리는 IT 강의를 듣지 못해 내년 3월까지 기다려야 한다”며 “한시라도 빨리 취업해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데 6개월 공백이 생기니 막막하다”고 하소연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현재 기획재정부와 예산 배정에 대한 논의를 진행 중”이라며 “최대한 이른 시기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고 말했다. /서종갑기자 gap@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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