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20일 “섬유 산업이 경쟁력이 있었을 때 신소재 개발 등 미래 산업으로의 전환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해 뼈저린 반성을 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섬유가 노동집약적 산업이라 인건비가 싼 개발도상국에 밀릴 수밖에 없다고 마냥 방치할 것이 아니라 고부가가치화를 통해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어야 했다는 것이다. 백 장관의 말대로 미래 준비에 손을 놓고 있었던 결과 섬유 산업의 경쟁력은 급격히 떨어졌다. 단적인 예로 섬유 산업의 고용은 상반기 기준 2016년 -0.7%, 지난해 -0.1%에서 올해 -4.5%로 일자리 감소폭이 크게 늘었다. 반면 중국 선전시는 안경·시계 등 전통 산업을 정부 차원에서 적극 지원하고 있다. 이 같은 투자 덕분에 중국에서는 모바일 기기와 결합한 ‘스마트 안경’ 등 혁신 제품들이 개발되고 있다.
자동차·조선·철강 등이 구조조정의 늪에 빠져 허덕이고 있는 것도 근본적으로 경쟁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타이밍을 놓쳤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그 결과 전통제조업의 고용은 사상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고용노동부의 사업체노동력조사를 분석한 결과 올 상반기 제조업 24개 세부업종 가운데 8개 업종에서 고용이 감소했다. 자동차·철강·조선·섬유·의류 등 과거 우리 경제를 든든히 떠받치던 산업들이 대거 포함됐다. 구조조정 중인 조선은 취업자가 13.5%나 줄었고 자동차도 GM 사태 등의 여파에 -1.7%를 기록하며 고용이 뒷걸음질쳤다. 자동차 부문의 고용 감소폭은 7년 만에 가장 컸다.
경쟁력이 약화하는 업종에서 일자리가 줄면 업황이 좋고 부가가치가 높은 업종에서 일자리를 늘려야 하는데 그런 현상도 미약하다. 반도체나 화학이 대표적이다. 반도체가 속한 전자부품·컴퓨터·영상·음향 및 통신장비제조업 취업자는 올 상반기 전년 동기보다 0.9% 늘어나는 데 그쳐 전산업 평균(1.5%)에도 못 미쳤다. 반도체와 함께 최근 한국 경제의 ‘투톱’으로 꼽히는 석유화학도 비슷하다. 석유화학이 속한 화학물질 및 화학제품제조업 일자리는 1.5% 증가했는데 이는 관련 통계를 집계한 2010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화학제품제조업과 전자부품업은 10만명 이상 고용 제조업종 중 1인당 부가가치가 높은 업종 1·2위다. 이들 업종이 고용을 제대로 늘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인력 이동이 저조하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고부가가치 산업이 고용을 제대로 늘리지 못하는 현상 역시 스케일이 큰 혁신을 못했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가령 반도체는 메모리 분야의 경쟁력은 높지만 비메모리(시스템) 분야는 세계 시장 점유율이 3%에 그친다. 시스템 반도체에는 인공지능(AI)이 결합된 차세대 반도체가 속해 있다. 이런 분야로 시장을 확대하면 새로운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질 수 있지만 정부는 그간 ‘반도체는 대기업이 하고 있어 지원할 필요가 없다’ 등을 이유로 손을 놓고 있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기업을 직접 지원하지는 않더라도 기초연구나 소재 개발 등은 정부가 충분히 투자해야 한다”며 “미국과 중국 등은 이런 노력이 활발하다”고 강조했다.
투자와 고용 증가로 이어질 수 있는 규제 개혁 역시 미적거렸다. 실제 규제프리존법은 4년 넘게 국회에 계류돼 있고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선제적으로 돕는 ‘기업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은 대기업 특혜 우려로 상당히 축소된 형태로 시행되고 있다.
여기에 문재인 정부 들어 최저임금과 법인세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 경영비용을 늘리는 정책이 쏟아지면서 제조업 고용 악화에 일조했다. 반도체·휴대폰·자동차·디스플레이 등 주력 제조업이 해외 생산과 고용 비중을 늘리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백흥기 현대경제연구원 산업전략본부장은 “기업이 투자를 해야 고용이 늘 텐데 경영환경을 갈수록 옥죄니 일자리를 늘리기가 어렵다”며 “투자환경을 대폭 개선하는 한편 전통제조업이 미래형으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게 연구개발 등의 지원을 확대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세종=서민준기자 morando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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