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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금융권과 전쟁'할 때가 아니다

손구민 금융부 기자





한국의 경제를 떠받쳐온 자동차·반도체·휴대폰·디스플레이·조선·석유화학 등 주력업종이 동시다발로 경고음을 내고 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과의 격차가 좁혀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왔지만 지금은 그런 얘기조차 들리지 않는다. 이미 기술이 엇비슷하거나 중국에 추월당해서다. 본지가 연재하고 있는 ‘10대 주력업종 정밀진단 시리즈’를 읽어봐도 산업현장의 위기감은 상상 그 이상이다.

지금까지는 대우조선이나 금호타이어 등 개별 기업의 부실만 부각돼 쉽게 체감하지 못했지만 업종 전체가 실적 부진에 빠지면 그만큼 대규모 감원이 불가피하다. 이는 곧 가계의 고정수입 감소로 이어지고 곧바로 금융부실로 전이될 여지가 커지는 것이다.

최근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이 소비자 보호에 방점을 찍은 ‘금융감독 혁신과제’를 밝혔다. 하지만 혁신과제 어디에서도 금융부실 가능성에 대한 위기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윤 원장은 “금융사와 전쟁을 해야 할 상황”이라고까지 했다. 윤 원장이 강조한 소비자 보호 강화나 금융사 지배구조, 은행 가산금리 산정체계 개선 등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의 주력산업이 어려워지고 있고 금융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금융사와 전쟁’을 운운하는 게 시기적으로 적절한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상급기관인 금융위원회가 반대 입장을 보인 근로자추천이사제 도입도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할 만큼 시급했는지 궁금하다.



금감원의 핵심역할은 은행 등 금융사들의 건전성을 살펴 리스크를 없애는 것이다. 이 때문에 금융사들이 분담금을 내고 금감원은 이 분담금을 예산으로 운영된다.

시장에서는 윤 원장이 금융권을 상대로 전쟁 의지를 밝힐 게 아니라 닥쳐올 금융권의 부실 리스크가 없는지 꼼꼼히 들여다보겠다는 메시지를 전달했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사별 자본 적정성과 연체비율 등을 철저히 관리하도록 하고 대규모 부실을 대비해 충당금을 보수적으로 쌓도록 감독하겠다는 게 ‘정답’이었다는 것이다.

금감원 실무진이 국내외 정세에 따른 산업위기의 조짐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실제 금감원은 업권별 실적이 발표될 때마다 “금리 인상기와 신흥국 금융위기 등에 따라 업권이 충당금을 더 쌓을 수 있도록 유도하겠다”고 밝혀왔다. 그런데도 금융감독 당국 수장이 취임 2개월 만에 내놓은 말이 ‘금융사와의 전쟁’이었다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윤 원장이 ‘전쟁 발언’에 과한 측면이 있었다고 한발 물러났지만 시장에는 ‘전쟁’ 메시지만 남게 돼버렸다.

지난 5월 윤 원장은 취임과 함께 “금감원은 국가 위험 관리의 중추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가 위험’이란 점점 가시화하고 있는 국내 경제와 주력산업의 위기일 것이다. 지금은 금융권과 전쟁할 타이밍이 아니라 기업과 가계부실이 금융으로 전이 되지 않도록 각종 완충장치를 마련하는 게 가장 급한 일이다. 윤 원장이 오랫동안 간직해온 금융감독 철학을 밝히고 싶었겠지만 밀려오는 위기를 알고도 전쟁 발언을 했다면 타이밍이 틀렸고, 모르고 했다면 정말 두려운 일이다. kmsoh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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