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 6개월 만에 몸무게 302g, 키 21.5㎝로 태어난 초극소·저체중 미숙아가 169일간의 집중치료 끝에 3㎏의 건강한 아기로 성장해 12일 퇴원했다. 국내에서 보고된 초미숙아 생존 사례 중 가장 작은 아기로 기록된 이사랑이는 생사의 고비를 여러 차례 맞았지만 ‘생존 확률 1% 벽’을 뛰어넘는 기적의 주인공이 됐다. 400g 미만으로 태어나 생존한 전 세계 아기를 등록한 미국 아이오와대 초미숙아 사이트에 올라온 201명 중 26번째로 작다.
12일 서울아산병원에 따르면 사랑이는 지난 1월25일 보통 신생아보다 4개월 일찍 세상 밖으로 나왔다. 인공수정을 통해 임신한 엄마가 임신중독증 때문에 24주 5일 만에 제왕절개 수술을 받아서다. 24주 만에 태어난 사랑이의 심장은 출생 직후 부드럽게 마사지하는 소생술을 거친 뒤에야 뛰기 시작했다. 숨을 쉬기 어려워 기관지 안으로 폐 표면활성제를 투여하는 치료도 받았다. 투석기·심폐보조기의 도움을 받을 수 없어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숨을 쉬었다. 태어난 지 일주일째에는 몸속에 머금었던 양수가 빠지면서 체중이 295g까지 떨어져 생존한계를 넘나들었다. 300g 이하에서는 생존 사례가 전 세계적으로 거의 없어 어린이병원 신생아팀(김기수·김애란·이병섭·정의석 교수) 의료진과 가족 모두 초긴장했다.
하지만 생사의 고비에서도 사랑이는 끊임없이 팔다리를 움직이며 기적의 시작을 알렸다. 미숙아 괴사성 장염을 예방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모유 수유를 위해 사랑이 엄마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모유를 짰다. 출산 후 첫 한 달은 몸이 불편한 엄마를 대신해 아빠가 매일 병원으로 모유를 날랐다. 사랑이는 600g 정도로 자란 뒤 인공호흡기를 뗐다.
사랑이 엄마 이인선(42)씨는 “남편의 생일에 운명처럼 찾아온 사랑이는 오랜 기다림 끝에 얻게 된 첫 아이인 만큼 가족들 모두 사랑이가 태어난 후 한순간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면서 “중환자실 의료진 모두가 사랑이의 아빠·엄마가 돼 헌신적으로 보살펴준 결과”라며 고마움을 전했다.
최근 5년 동안 서울아산병원에서 태어난 초미숙아 33명의 생존율은 52%로 세계 최고의 치료 성적을 보이는 일본과 비슷한 수준이다. 2014~2016년 500g 미만으로 태어난 국내 초미숙아는 총 163명이다. 초미숙아들은 아무리 작은 주삿바늘도 팔뚝 길이와 비슷해 삽입 자체가 쉽지 않다. 혈액 몇 방울만 채혈해도 빈혈로 이어지고 불가피한 수술을 못해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경우도 많다.
일반적으로 1㎏ 미만으로 태어난 미숙아들은 호흡기계·신경계·위장관계·면역계 등 신체 모든 장기가 미성숙해 호흡곤란증후군, 동맥관개존증, 태변 장폐색증, 괴사성 장염, 패혈증, 망막증 등 다양한 미숙아 합병증을 앓는다. 사랑이의 주치의 정의석 교수는 “300g 정도의 초미숙아가 한 번의 수술도 받지 않았는데 모든 장기가 정상이고 미숙아들에게 발생하기 쉬운 뇌실 내 출혈 없이 온전하게 생존한 것은 전 세계적으로도 드문 사례”라며 “사랑이는 500g 미만으로 태어난 초미숙아들에게 새로운 희망”이라고 말했다. /임웅재기자 jael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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