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당 52시간 근무제에 따른 주당 근무시간 카운팅이 2일 전국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 일제히 시작되는 가운데 대다수의 기업이 1일 현재까지도 새 제도에 대한 대응 방안을 구체화하지 못하고 있다. 생산현장의 잔업과 특근, 사무현장의 야근이 만연했던 수십년 관행을 일시에 끊고 새 제도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마다 머리를 짜내고 있지만 52시간 근무제 도입에 따른 혼란은 업종을 가리지 않고 벌어지고 있다.
◇제조업체, 물량·납기 맞추기가 최대 고민=한국 제조업체의 대다수는 1차든 2~4차든 대기업에 대한 벤더(납품자)다. 그런데 이들 납품업체가 주당 52시간 근무제를 두려워하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다. 납품업체들은 그간 잔업과 특근을 돌려 납기와 납품 물량을 지켜왔는데 당장 이번 주부터는 물량과 기한을 맞출 수 있는지 걱정이 태산이다. 자동차부품 업체의 한 대표는 “잔업과 특근을 끊으려면 설비를 늘리고 사람을 더 뽑아야 하는데 그럴 여유가 부족했다”면서 “작업의 스피드를 높이고 일부 사무직을 공장에 투입해 (물량과 납기를) 맞춰보고자 하는데 품질이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들 업체 제품을 최종적으로 납품받는 대기업들은 이미 장시간 근로 문제를 해결해 현재 형태로 근무해도 주당 52시간을 넘지 않는다. 그러나 대기업들은 부품 수급 차질이 걱정이다. 완성차 업계의 한 관계자는 “벤더들은 300인 이상 기업이라도 영세한 곳이 대부분”이라며 “처벌이 유예된 6개월 동안 많은 업체가 52시간 근무를 어겨가며 물량을 맞추려고 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난감해했다.
근무시간 단축에 따른 근로자의 소득 감소는 노사 협상에 짐이 되고 있다. 한 제조업체의 관계자는 “노조가 잔업·특근할 때 벌던 소득을 어느 정도라도 보전해달라고 할 게 틀림없지 않겠냐”며 “소득이 다소 줄더라도 장시간 근로를 끊자는 법 취지를 빡빡한 살림의 근로자가 받아들이기는 어려운 일”이라고 토로했다.
대기업 사무직도 비상이다. 마감 때마다 야근을 반복해온 재무·경리 부서, 보고자료를 밤새 만들고는 했던 기획이나 마케팅 부서, 외부에서 고객을 만나야 하는 영업부서 모두 걱정이다. 사무직은 어디까지가 근무인지 스스로 잘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인사부서에서는 ‘근무시간을 알아서 지키라’는 지침이 내려와 이번 혼란이 각자의 몫으로 돌아가게 됐다.
◇신작 출시 IT·건설업계 해외현장에서도 혼란=연구개발(R&D)이 중요하고 엔지니어 비중이 많은 정보통신기술(ICT) 업체는 필요할 때 집중적으로 근무하고 여유가 있을 때 근무시간을 줄이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특히 게임 업계는 24시간 서비스가 이뤄지는 특성상 문제가 생겼을 때 얼마나 빠르게 대응하는지가 매출에 영향을 미친다. 이 때문에 신작 출시, 대규모 업데이트 등 집중적인 근무가 필요한 시기를 위해 선택적 근로시간제와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최대 단위 기간을 각각 1개월과 3개월에서 2배 이상 늘릴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공기(工期)가 곧 돈인 건설 업계도 혼란이다. 특히 해외 현장의 경우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막막한 상태다. 해외 파견 국내 근로자에 대한 주 52시간 근무가 적용되면 공기를 맞추기 위해 현지 근로자를 추가로 고용해야 할 판이다. 한 대형사 관계자는 “컨소시엄 형태로 함께 사업을 수주한 해외 업체가 왜 한국 사람들만 주 52시간만 근무해야 하는지 벌써부터 불평하고 있다”며 “공기를 맞추기 위해 인력과 장비를 더 투입해야 해 비용 부담이 더 늘어나게 생겼다”고 말했다.
◇추가 인력 채용 쉽지 않은 유통·식품 업계=성수기와 비수기가 뚜렷한 유통·식품 업계는 확충해야 할 인원수조차 정하지 못한 업체들이 적지 않다. 일단 최대한 기존 인력을 활용하거나 최소한의 추가 채용을 통해 주 52시간을 맞춰보고 상황에 따라 2차·3차 대응에 나설 계획이다.
A사 관계자는 “일부 공장에서 주 52시간 근무제를 시범 운영했는데 근무 시간이 줄어들어 소득이 주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 근로자들이 많았다”고 한숨을 쉬었다. B사 역시 “일단 인력 조정으로 대처해보고 안될 경우 공장 가동 일수 감축 등도 고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홈쇼핑 업계도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전날 방송 때문에 길게 근무한 사람이 다음날 언제, 어떤 방식으로 쉴 것인지 정하는 게 쉽지 않다. 다음 날 오전에 쉴지, 오후에 쉴지 아니면 모아서 휴일을 만들지 정해지지 않았고 부서마다도 다르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백화점·마트 등은 매장 운영시간을 줄이거나 직원 퇴근 시간을 앞당기며 대응할 계획이다. 하지만 영업시간 감소에 따른 매출 감소와 고객의 불편에 대한 불안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이재유·권경원·한동훈기자 0301@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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