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거돈 부산시장 당선자가 공약대로 김해 신공항 계획을 중단하고 가덕도에 공항을 지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동남권 신공항 입지를 두고 부산과 대립했던 대구·경북은 오 당선자의 가덕도 신공항 건설 방안에 반대 의견을 내고 있다. 정부는 김해 신공항 추진 방침에 변화가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지방선거 당선자들의 공약이었던 만큼 논란이 가라앉기까지 적잖은 진통이 예상된다.
이번 논란은 지난 25일 오 당선자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재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시작됐다. 오 당선자는 “김해 신공항은 잘못된 정치적 판단”이라며 “김해 신공항 건설로는 24시간 운영이 안되고 항공수요 증가에 따른 확장성도 없기 때문에 가덕도 신공항 재추진에 추호도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부산의 백년대계를 위해 김해 신공항 건설안을 지금 중단하고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반드시 이뤄 내겠다”고 말했다.
오 당선자가 불을 지피자 지역 정치인들이 힘을 보태고 나섰다. 오 당선자를 포함한 더불어민주당 소속 부산·울산·경남 광역단체장 당선자들이 모여 ‘상생 협약’을 발표했다. 이들은 신공항 건설과 관련해 특정한 지역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일각에서는 문재인 대통령 공약 사항인 만큼 사실상 부산 가덕도 신공항을 염두에 둔 행보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민주당 소속 허성곤 김해시장 당선자와 김정호 김해을 당선자도 김해 신공항을 재검토해야 한다며 오 당선자의 말에 힘을 실었고, 김해가 지역구인 민홍철 민주당 의원도 가덕도가 신공항 부지로 적합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야당에서는 오 당선자 등이 영남 내 갈등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야당 측은 이미 정리된 사안을 재론하는 것은 노골적인 대구·경북 죽이기라며 민주당이 TK(대구·경북)와 PK(부산·경남)를 분리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고 반발했다.
정부는 정치권에서 나오는 부산 가덕도 신공항 건설 주장과 관련해 “검토 대상이 아니다”고 못 박았지만 입장이 바뀔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순 없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도 최근 열린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이 같은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최근 불거진 동남권 신공항 논란과 관련해 이미 김해 신공항이 정부 내 의사 결정을 거쳐 추진되고 있는 만큼 공항 위치를 바꾸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8월까지 김해 신공항 기본계획을 마련할 계획으로 활주로 문제를 포함해 김해 공항 소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해 반영할 방침이다.
앞서 국토부는 2016년 6월 동남권 신공항을 짓기로 하고 가덕도와 밀양 두 곳 중에서 입지를 고심하다 기존 김해 공항에 활주로 1본을 더 넣는 김해공항 확장안, 즉 김해 신공항 안을 발표했다. 국토부는 작년 8월 김해 신공항 건설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기본계획 수립 용역을 시작해 현재 막바지 작업 중이다. 2026년까지 연간 3,800만명의 항공수요를 처리할 수 있도록 기존 김해공항 인근 290㎢ 부지에 5조9,576억원을 들여 3,200m 활주로 1본과 국제여객터미널 등 부대시설을 짓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영남권 신공항 건설 논의는 지방 선거는 물론 대통령 선거에도 단골 메뉴로 등장해왔다. 지역 표심을 얻기 위한 방법으로 다양하게 활용됐지만, 막상 정권을 잡으면 흐지부지되길 반복했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는 부산·울산·경남 상공인들의 신공항 건설 건의를 받고 “적당한 위치를 찾겠다”고 답했다. 노 대통령이 옛 건설교통부에 동남권 신공항을 공식 검토하라고 지시하면서 국책 사업이 됐으나 정권이 바뀌면서 흐지부지 됐다. 2007년 이명박 대통령 후보가 이를 다시 공약으로 내걸었고, 이 대통령 당선 후인 2009년 12월에 경남 밀양과 부산 가덕도가 신공항 건립 후보지로 선정됐다. 하지만 타당성 조사 결과 조건에 부합하지 못한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이 대통령은 2011년 대국민 사과를 하며 신공항 공약을 백지화했다. 2012년 대선에서는 박근혜·문재인 후보가 다시 공약으로 발표했다. 박 대통령은 2016년 기존 김해 공항을 확장하고 대구공항과 K2공군기지를 합친 ‘대구통합공항’을 이전하겠다고 결정해 영남권 신공항 논란이 일단락됐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4월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을 앞두고 ‘동남권 관문공항 건설’을 약속했고, 오 부산시장 당선자도 지방선거 때 대표 공약으로 ‘가덕도 신공항 재추진’을 내세우며 사업 재검토를 요구했다.
/부산=조원진기자 bscity@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