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원·달러 환율이 1,056원60전까지 떨어졌다. 종가 기준 2014년 10월 이후 가장 낮은 수치이고 6거래일 연속 하락한 것이다. 원화 강세가 커졌다는 뜻이다. 3일에도 이런 흐름은 계속돼 원·달러 환율은 1,054원20전으로 마감했다.
원화 강세는 북한 리스크 완화 등이 어느 정도 기여했지만 시장에서는 한국 정부가 외환시장 개입을 제한하기로 미국과 합의했다는 소식이 큰 영향을 줬다는 분석을 내놨다. 우리 외환당국의 시장개입 여력이 약해진 점을 노린 투기세력 유입으로 원화 강세가 커졌다는 것이다. 정부는 합의를 마쳤다는 미국 발표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지만 시장은 관련 논의를 한 사실만으로도 출렁였다.
환율 정보 공개 이슈에 따른 리스크는 더 커질 소지도 있다. 현재 한국과 미국 정부는 외환시장 개입 내역 공개에는 뜻을 모았고 구체적인 공개 방법을 협의하고 있다. 이때 공개 방법이 우리에게 불리하게 결정될 경우 타격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공개 주기가 문제다. 공개 주기가 짧을수록 우리 외환당국의 외화 매수·매도, 즉 시장 개입 패턴이 자주 노출되고 투기세력이 악용할 우려도 커지기 때문이다. 외환변동성이 커질 때 대처도 어려워질 수 있다. 정보가 자주 노출될수록 시장 개입 때 부담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지금도 외환당국은 미세조정(스무딩 오퍼레이션) 정도로만 시장에 개입하는데 이마저도 손발이 묶일 수 있다는 얘기다.
환율정책의 운신의 폭이 좁아지면 지나친 원화 강세에 적절히 대처하기 어렵고 궁극적으로 수출 경쟁력 저하로 이어진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가 환율 정보 공개 이슈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정보 공개 주기를 1개월 이내로 하라고 요구하면서 우리 정부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미국은 일본·영국·호주 등 주요국이 1개월 단위로 외환시장 개입 내역을 공개하고 있는 점 등을 들어 우리를 압박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정보 공개 주기를 6개월 단위 이하로 가져가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최근 외환시장 개입 내역 공개를 결정한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베트남도 반기 기준을 적용한 점 등을 강조하고 있다. 일본·영국·호주 등은 기축통화국이거나 우리보다 시장 규모가 커 적절한 비교 대상이 아니라고 보고 있다.
외환당국의 한 관계자는 “지금도 한국은행 외환보유액이 한 달마다 공개되고 있어 시장에서도 외환시장 개입 정도를 추정할 수는 있다”면서도 “추정에는 오차가 있기 마련이고 정부가 환율 정보를 공식 발표하면 개입 규모가 더 명확해지기 때문에 1개월 단위로 공개하는 것은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다음달 미국의 환율보고서 발표를 앞두고 있어 협상에 제약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한국은 현재 환율조작국 직전 단계인 관찰대상국으로 분류된 상태다. 미국이 환율조작국 지정을 무기로 정보 공개 협상에서 한국을 압박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점 때문에 문제가 불거지기 전에 외환시장 개입 내역을 공개했어야 했다는 의견도 나온다.
전승지 삼성선물 책임연구원은 “이왕 협상 테이블에 오른 만큼 최대한 협상 전략을 잘 세워 정보 공개 주기를 넓히는 방향으로 결론을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민준기자 morando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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