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은행으로 기업 구조조정 업무를 일선에서 총괄해온 KDB산업은행의 역할이 축소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며 투자은행(IB)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산은의 대표적인 구조조정 전문가들이 일선에서 물러난데다 정부가 은행보다 자본시장을 통한 구조조정에 힘을 실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산은의 구조조정 기업 매각에 매달렸던 IB 업계도 프라이빗에쿼티(PE) 중심으로 주도권이 바뀔 것으로 전망된다.
31일 산업은행에 따르면 연말 연초 인사에서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해온 정용석 구조조정부문 부행장과 김석균 기업구조조정 1실장이 물러났다. 정 부행장은 지난 1998년부터 대우그룹의 구조조정을 전담했고 금호그룹·대우조선해양·STX그룹 구조조정을 담당한 국내 대표적인 구조조정 전문가다. 법정관리와 자율협약의 장점을 살린 사전계획회생제도(프리패키지플랜·P플랜) 도입을 추진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우조선해양 구조조정 과정에서 회사채 투자자인 국민연금과 갈등을 빚었고 금호타이어 매각도 금호그룹과 분쟁 끝에 무산됐다. 새 정부가 들어선 후에는 일자리 감소와 지역 경제 악화를 이유로 구조조정의 동력이 떨어졌다는 안팎의 평가가 나왔다.
정 부행장은 법무법인 김앤장으로 둥지를 옮겼고 그가 떠난 자리는 기업금융부문을 맡은 성주영 부행장이 기업구조조정부문을 겸임하게 됐다. 김석균 실장이 있던 구조조정 1실은 정 부행장 밑에서 주요 대기업 구조조정을 도맡아왔지만 현재까지 공석이다. 그 밖에 일부 직원은 구조조정실을 떠나 후선 부서로 물러났다.
산은이 다시 추진하고 있는 금호타이어 매각 역시 구조조정실 전담이 아니라 자본시장부문 등 타 부서가 참여하는 태스크포스(TF)에서 추진하고 있다. 특히 금호타이어 매각 TF는 구조조정부문을 겸직한 성 부행장이 아닌 이대현 수석부행장이 직접 챙기고 있다. 산은 관계자는 “1차 매각 때와 달리 다양한 방식을 동원하기 위해 TF를 꾸려야 한다는 게 경영진의 판단”이라고 설명했다. 산은이 업계의 예상을 깨고 매각 막바지에 접어든 대우건설도 구조조정실의 작품은 아니다. 산은은 펀드를 조성해 대우건설을 인수했기 때문에 이를 담당하는 자본시장부문 산하 PE실이 주도했고 이동걸 산은 회장이 뒷받침했다. 대우건설 매각 관계자는 “매각 중반까지만 해도 산은이 포기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회장이 강한 의지로 밀어붙였다”고 전했다.
은행업계 관계자는 “산은의 전 회장은 정치권과 금융당국의 입장에 신경을 쓰는 정무적 감각이 발달했다면 이번 이 회장은 학자 출신의 원칙주의자로 상반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산은이 정치권과 금융당국의 외풍을 받고, 산은 스스로 임직원이 구조조정 기업으로 이직하며 낙하산 비판을 받으면서 산은 주도의 구조조정은 변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또 다른 정책금융기관인 성장사다리금융의 기업 관련 펀드가 주목받고 있다. 성장사다리금융은 민간 자금과 매칭해 투자하는 구조여서 공적자금이 들어간 은행의 구조조정보다 시장 친화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새 정부 들어 성장사다리금융은 구조혁신펀드(1조원), 혁신모험펀드(2조7,000억원), 코스닥스케일업펀드(3,000억원)를 조성해 기업 구조조정은 물론 창업 초기 기업과 성장 가능성이 높은 코스닥 기업에 투자할 계획이다.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중개역할을 맡는 증권사 IB 부서나 민간 PE, 회계법인 등도 최근 들어 산은보다 성장사다리금융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이들 중 일부는 산은 구조조정실만 전담하던 팀을 축소하고 성장사다리금융 쪽으로 역할을 키우고 있다. 성장사다리금융 관계자는 “산은은 대기업 위주로 지원하고 성장사다리는 중소기업 위주여서 최대한 겹치지 않도록 투자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세원·박시진기자 wh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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