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50조원에 달하는 미국 퀄컴의 반도체 업계 사상 최대 규모 인수·합병(M&A)을 조건부 승인했다. 세계 최대 모바일 반도체 업체인 퀄컴이 네덜란드 차량용 반도체 기업인 NXP를 인수하면서 생기는 진입 장벽을 막기 위해 근거리무선통신(NFC) 표준필수특허를 매각하라는 등의 조건이 달렸다.
공정위는 퀄컴이 NXP를 인수할 경우 NFC 특허를 매각하거나 특허권 행사를 금지하는 등의 시정조치를 부과하는 조건으로 M&A를 승인했다고 18일 밝혔다. NFC는 10m 이내 근거리 무선통신에 사용되는 반도체로 결제, 신분확인, 제품정보 판독 등의 용도로 쓰이는 기술이다.
퀄컴은 지난 2016년 10월 NXP를 반도체 업계 사상 최고액인 470억 달러(약 50조2,000억 원)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자동차 에어백과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등 차량용 반도체를 주로 생산하는 NXP를 인수해 스마트카·사물인터넷(IoT) 분야로 사업을 확대하기 위해서였다.
인수 발표 이후 반도체 업계에서는 시장의 지배력이 지나치게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가 컸고 이에 따라 각국 경쟁 당국이 M&A를 승인해줄 지가 관건이었다. 퀄컴은 지난해 5월 한국 공정위에 이 기업결합을 신고했다. 두 회사는 외국에 본사를 두고 있지만 각각 국내 연 매출액이 200억 원 이상이라 한국 공정위에 심사를 받아야 한다.
공정위는 모바일 반도체 시장 지배력이 큰 퀄컴이 M&A 이후 NXP의 NFC 특허 라이선스 정책을 변경해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를 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특히 퀄컴은 자신이 보유한 모든 특허를 패키지 방식으로 한꺼번에 라이선스를 주고 있기 때문에, NXP가 보유한 NFC·보안요소칩과 관련한 ‘특허 우산’을 구축하고 로열티를 인상할 우려가 있다고 봤다.
이와 더불어 퀄컴이 이번 인수로 부품 간 상호호환성 보장에 필요한 정보·기술지원 제공을 거절하거나, 상호호환성이 저해되는 방식으로 설계를 변경할 우려도 제기 됐다. 현재는 별개인 LTE 칩세트와 NFC 칩을 기술발전으로 하나로 통합하면서 퀄컴의 시장지배력이 더욱 강화되며 궁극적으로는 모바일 기기 시장 혁신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이에 따라 공정위는 NXP가 보유한 NFC 표준필수특허와 시스템 특허를 제3자에게 매각하도록 했다. 기타 NFC 특허는 인수를 허용하지만 특허권 행사를 금지하고, 다른 특허와 분리해 독립적으로 무상 라이선스를 제공하도록 했다. 퀄컴이 보유한 NFC 표준필수특허는 칩 판매와 라이선스를 연계하지 않도록 하고, 경쟁사에 프랜드(FRAND·공정하고 합리적이며 비차별적인) 조건으로 라이선스를 제공하도록 했다. 공정위는 또 경쟁사나 구매자가 요청할 때 현재 존재하는 라이선스 조건과 같은 조건으로 보안요소칩 인증기술( MIFARE)라이선스를 제공하도록 했다.
퀄컴과 NXP의 M&A는 유럽연합(EU)과 중국 경쟁 당국에서도 심사가 진행 중이며 한국 공정위와 비슷한 수준의 조치를 취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용호 공정위 기업결합과장은 “모바일 산업 핵심 기술에 대한 경쟁제한 우려를 근본적으로 해소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며 “조치 과정에서 EU집행위원회, 일본 공정취인위원회와 긴밀히 공조했다”고 설명했다.
/세종=강광우기자 press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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