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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 술고래 러시아의 절주





술 없는 러시아는 상상할 수 없다. “세상에 추녀는 없다. 다만 보드카가 부족할 뿐”이라는 러시아의 우스갯소리는 유별난 술 사랑을 보여준다. 일단 술판이 벌어지면 끝장을 본다. 술깨나 한다는 국내 기업 임직원들도 러시아 주재원 시절 40~60도의 보드카 고문에는 두 손 다 들 수밖에 없다고 한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서기장이 1985년 보드카 생산·판매를 억제한 절주법을 시행하면서 내건 슬로건이 ‘제정신이 정상’이었으니 오죽할까 싶다.

러시아인이 왜 술고래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일단 혹한의 날씨를 들 수 있다. 얼어붙은 몸을 녹이려 음주문화가 발달했다는 것이다. 러시아인이 유전적으로 알코올 분해를 잘하는 체질이라는 학설도 있다. 러시아 황제가 황실 재정을 늘리기 위해 국영주점을 남발하면서 음주를 부추겼다는 분석도 있다.



이유야 어떻든 술 권하는 문화는 사회적으로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다. 밤새 술에 절고 나와 근무하니 생산성이 오를 리 만무하다. 생산가능인구의 사망 원인 가운데 절반쯤이 음주와 연관돼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래서 혁명기와 전쟁통에는 금주 또는 절주령이 내려졌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 직후에는 보드카가 사회주의 정신을 흐린다고 해서 탄압의 대상이 됐다. 이때 왕실 귀족과 대지주들이 유럽과 미국으로 빠져나가면서 보드카 제조 비법이 세계로 전파됐다고 한다.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은 술고래로 유명하다. 독한 보드카를 음료수처럼 벌컥벌컥 들이켰다. 옐친이 1994년 술 때문에 정상회담을 펑크 낸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술에 곯아떨어진 나머지 아일랜드 공항에 도착한 비행기에서 내리지도 못한 것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옐친과 정반대다. 애주가로 알려진 그는 2009년 총리 시절부터 길거리 음주 금지와 심야 주류판매 억제 등 반알코올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그 효과가 이제 서서히 나타나는 모양이다. 2016년 러시아의 1인당 음주량은 12ℓ로 2009년에 비해 30% 줄었다고 한다. 그래도 갈 길은 멀다. 세계보건기구(WHO) 회원국 평균치의 두 배나 된다. 러시아인은 영하 40도는 추위가 아니고 보드카 4병은 술이 아니라고 호기를 부리지만 술 앞에는 장사가 없는 법이다. /권구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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