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방송되는 KBS1 ‘다큐공감’에서는 ‘감나무골 할매들’ 편이 전파를 탄다.
경상남도 산청의 11월은 감나무의 달(月)이다. 오는 사람 다 품어준다는 지리산 아래 자리 잡은 마을엔 선홍빛으로 통통하게 여문 감이 집집마다 주렁주렁 열렸다. 산청에 사는 사람치고 감나무에 대한 기억 하나 없는 사람이 있을까. 허나 이 마을의 어머니들에게 감나무는 현실이었다. 하늘에 닿을 듯 높이 뻗은 나무에 올라가 감을 따고, 깎고, 말려 곶감을 만들어야만 자식들을 대학에 보낼 수 있었던 고달픈 시절. 그렇게 숱한 세월을 함께 보내며 감나무와 어머니들은 서로 닮기 시작했다. 고욤나무에 접붙이듯 시집와서 자식들을 낳아 키우니 피부는 마르고 갈라져 늙으면 속이 까매지는 감나무처럼 멍든 마음까지. 어머니에게 감나무는 어떤 의미일까? 감나무와 어머니들의 속 깊은 인생 이야기가 시작된다.
▲ “좋은 거는 아들 보내주고 벌레 먹은 거는 내 묵고”
전에 없던 풍년으로 보기만 해도 배부른 고종시가 마을 골목과 산밭, 논에까지 탐스럽게 열렸다. 옛날 고종황제가 즐겨 먹었다 하여 이름까지 고종시라 불리는 감이 지천에 널렸건만 김필순(79) 할머니는 오늘도 밭으로 향한다. 곧 있으면 이 많은 감을 따야 하는데 한창 수확을 앞둔 전답의 일들이 할머니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자식들에게 하나라도 더 보내주기 위해 약 한번 뿌리지 않고 키웠건만 멧돼지에 까치, 달팽이까지 나눠 먹는 통에 농사가 호락호락하지 않은데. 그래도 자식 농사 하나만큼은 잘 지었다는 할머니는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평생을 부지런하게 살아 자식들을 훌륭하게 키워냈지만 오늘도 자식들 걱정뿐이다.
▲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건 가난이다
귀한 사람이 와야만 꺼내 먹는다는 곶감을 가지고 마당에 모인 할매들은 감떡을 찌고 곶감장아찌를 버무리며 솜씨를 발휘한다. 이 마을로 시집와 가난함에 고생하던 시절을 생각하면 곶감 잔치를 벌이는 이 순간이 꿈만 같이 느껴지는데. 할매들의 손은 어디 하나 성한 곳 없이 거칠게 휘어지고 비틀어졌건만 정작 자식들이 속 썩인 것보다 쌀밥 한 공기 자식들 입에 넣어주지 못했던 시절이 생각나 가슴에 사무친다는 할매들. 도대체 모성애란 무엇일까. 때로는 골병들게 한다 하여 골병 나무로 불리는 감나무지만 잘 커 준 자식들만 생각하면 할매들에겐 고마운 효자 나무다. 감 따는 시절을 앞두고 할매들의 추억 이야기는 끊이지 않는다.
▲ 감 따는 철, 전쟁터가 따로 없는 감나무골
죽은 송장의 손도 빌려야 할 정도로 바쁘다는 감나무의 계절은 낮으로 따고 밤으로 깎아도 시간이 부족하다. 손 놀리는 날 없이 마을에서 최고 많이 일했다는 바지런한 김필순(79) 할머니도 태산 같은 감 앞에선 걱정이 앞선다. 감을 따기 위해 나무에 오를 때마다 3년 전 세상을 뜬 할아버지 생각이 더욱더 간절해진다는 할머니. 자식들은 혹여나 어머니가 다치실까 일하지 마시라 하지만 할머니는 여든을 앞둔 나이에도 감나무를 쉽게 놓지 못한다. 감나무는 할아버지가 심어놓은 흔적이자 자식들을 키워낸 기억이기 때문이다. 그 날 저녁, 대처에 나가 있던 자식들이 감을 따러 고향에 찾아오는데.
[사진=KBS 제공]
/서경스타 전종선기자 jjs7377@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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