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는 지난달 정부가 실시한 아스콘(아스팔트 콘크리트)·레미콘(굳지 않은 상태의 콘크리트) 물량 입찰에서 ‘짬짜미’를 한 충청지역 조합들을 무더기로 적발했다. 공정위는 현행 ‘중소기업자간 경쟁제도’가 담합을 부추긴다며 중소벤처기업부와 조달청에 제도 개선을 요청했지만 반응은 미적지근하다.
지난달 11일 공정위는 2014~2015년 정부가 실시한 아스콘, 레미콘 입찰에서 사전에 입찰가격과 물량을 담합한 대전·세종·충남지역 3개 아스콘 조합과 충북지역 3개 레미콘 조합에 과징금 총 73억6,900만원을 부과하고 시정명령을 내렸다. 공정위는 특히 이번 담합이 중기간 경쟁제도 자체의 한계에서 비롯됐다고 봤다.
정부가 발주하는 레미콘, 아스콘 물량은 중기간 경쟁제도에 따라 조달청이 ‘희망수량 경쟁입찰 방식’으로 구매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현행 희망수량 경쟁입찰 방식에 따르면 입찰 참가자의 투찰수량 합이 입찰공고 수량과 같을 경우에는 모든 참가자가 낙찰을 받을 수 있다. 이들 아스콘·레미콘조합은 이러한 특성을 이용해 사전에 입찰 물량과 가격을 짬짜미했다는 것이 공정위의 판단이다. 이태휘 공정위 정책홍보담당관은 “현행 중기간 경쟁제도의 희망수량 경쟁입찰 하에서는 경쟁의 유인이 없어 낙찰가격이 예정가격 대비 99.9% 이상에서 결정되고 있다”며 “외형상 경쟁의 형태를 띠고 있으나 단체수의계약 시기와 다를 바 없는 낙찰률이 유지돼 실질적인 경쟁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기간 경쟁제도는 정부가 지정한 제품을 공공기관이 구매할 때 중소기업만을 대상으로 제한경쟁이나 지명경쟁 입찰을 하는 제도로 중소기업의 판로 지원을 위해 지난 2007년 도입됐다. 단체수의계약제도가 수혜업체 편중과 조합 운용 부조리 등의 문제를 일으키자 이를 대신해 도입된 제도다. 조달청은 이에 따라 2007년부터 희망수량 경쟁입찰 방식으로 레미콘·아스콘 구매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하지만 시행 10년이 되도록 입찰 담합 등의 부작용이 끊이지 않는데도 조달청과 중기부는 뒷짐만 지고 있다. 실제로 이번에 공정위가 적발한 레미콘·아스콘 공공조달시장의 입찰 담합은 지난해 감사원에서도 이미 지적한 내용이다.
감사원은 지난해 10월 조달청이 2015년 희망수량 경쟁입찰 방식으로 낙찰자를 선정한 레미콘·아스콘 구매계약 92건을 점검하고 그중 88건에서 담합이 의심되는 사례를 확인했다. 감사원은 조달청장과 당시 중소기업청장에게 레미콘·아스콘의 희망수량 경쟁입찰 방식을 다수공급자계약 방식으로 전환하는 등 개선방안을 마련하라고 통보했지만, 핵심인 입찰방식 전환 조치는 없었다. 다수공급자 계약은 조달청이 제품별로 다수업체와 각각 단가계약 후 ‘나라장터’ 시스템에 등록하면 수요기관이 업체와 제품을 선택해 구매하는 제도다.
이번에 되풀이된 공정위의 제도 개선 권고에도 경과는 지지부진하다. 조달청은 당초 9월 안으로 제도 개선 관련 방안을 내놓겠다고 했다가 이후 “내부적으로 다시 한 번 안을 검토하고 업계와도 협의를 거쳐야 한다”며 차일피일 발표를 미루고 있다. 제도 개선을 주도해야 하는 중기부가 장관 인선 지연으로 사실상 ‘내부 공백’인 탓도 있지만, 일각에서는 조달청의 문제 해결 의지가 약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이 담당관은 “중기부와 조달청도 중기간 경쟁제도와 희망수량 경쟁입찰 방식의 문제점에 대해 인식하고 있지만, 조합과의 관계를 의식해 과감한 정책 추진을 못해왔다”며 “조합의 담합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범부처적으로 사명감을 갖고 대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기회에 희망수량 입찰방식 뿐 아니라 중기간 경쟁제도 자체의 문제점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재현 중견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중소기업자간 경쟁제품 지정제도의 문제점 및 개선방안’ 보고서에서 공공조달에 따른 기업 성장효과를 분석한 결과 중소기업의 조달의존도가 높을수록 성장이 둔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그는 “중기간 경쟁제도는 조달시장 경쟁력 약화, 공급집중도 심화 및 중소기업의 성장 유인 감소 등의 문제를 야기한다”며 “상위금액 구간에 대한 지정 제외, 중견·대기업의 진입을 허용하는 예외조항 규정 등으로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정책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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