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통화스와프 만기 연장 가능성에 먹구름이 끼었다. 만기가 열흘 앞으로 다가오면서 우리 정부가 연장을 위해 원·위안화 직거래시장 ‘시장조성자(마켓메이커)’ 제도 등의 카드를 총동원하고 있지만 중국의 반응은 미지근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와 중국이 명절(추석·국경절)을 맞아 긴 연휴에 들어가면서 마지막 거래일인 29일은 사실상의 협상 시한이었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29일 “만기가 연장될 것 같았으면 진즉 됐을 것”이라면서도 “일단 막판까지 협상에 최선을 다해보겠다”고 했다. 물론 이날도 낭보는 없었다.
통화스와프는 서로 다른 통화를 미리 정한 환율에 따라 교환할 수 있는 협정이다. 외환시장의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한 안전판 역할을 한다. 자본시장 개방도가 높고 기축통화국이 아닌 한국으로서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다음달 10일 만료되는 한중 통화스와프의 규모는 560억달러로 우리나라가 맺은 전체 통화스와프(1,222억달러)의 46%다. 연장이 무산되면 우리 외환 보험의 절반이 흔들리는 셈이다. 사상 최대의 외환보유액(3,848억4,000만달러)과 66개월 연속 흑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경상수지 등으로 볼 때 당장 시장이 입을 타격은 크지 않다지만 심리적인 우려와 불확실성까지 막기는 어렵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북한 리스크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자본유출에 대응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방법은 통화스와프 확대”라고 강조했다. 오정근 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은 지난 28일 ‘외환위기 20년-평가와 정책과제’ 심포지엄에서 우리나라에 경제 위기가 닥칠 경우 현재 보유한 외환보다 831억달러가 더 필요하다고 추산하기도 했다.
27일 문재인 대통령이 “한중 통화스와프 연장이 관계개선의 징표라는 점에는 공감한다”며 직접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다만 “정무적 문제이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가봐야 한다”고 전했다.
외환당국 역시 막바지 협상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내밀 수 있는 협상 카드도 모두 동원했다. 2014년 하반기부터 한중 간 위안화 거래 활성화 차원에서 시행하고 있는 원·위안 직거래시장과 국내 은행의 마켓메이커 지정 제도도 그중 하나다. 우리 정부는 2014년 12월부터 원·위안 직거래시장을 열고 시장 몸집을 불리기 위해 12개 은행을 마켓메이커로 지정했다. 중개수수료를 깎아주고 외환 건전성 부담금을 감면해주는 등 각종 혜택도 제공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3년에 직접 합의한 ‘위안화 활용도 제고’ 차원의 노력이었다. 양국이 두 번째로 통화스와프를 연장하기로 뜻을 모은 것도 이때였다. 양국 간 자유무역을 활성화하고 달러 의존도를 낮추자는 게 기본 취지였지만 중국이 공들여온 위안화 국제화에 힘을 실어주는 측면도 있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중국이 장기적으로 위안화 국제화를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도 위안화 활용도 제고를 위해 여러 가지 협력해왔다”며 “중국이 연장 협상에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한다면 한국으로서도 위안화 거래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기 어렵다는 점을 피력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그동안 “양국 경제에 서로 도움이 된다는 논리로 협의해나갈 것”이라는 입장을 밝혀 왔다.
한중 통화스와프 협상 타결이 발표되지 않더라도 연장 가능성은 남아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가 아랍에미리트(UAE)와 맺은 통화스와프는 지난해 10월12일로 만기를 맞았지만 양국은 연장 합의를 원칙으로 1년째 협의 중이다. 일각에서는 다음달 18일 중국의 제19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 이후에는 한중 통화스와프 협상에도 물꼬가 트일 것으로 보고 있다. 시 주석이 국내 정치적 문제들을 정리하고 나면 한중관계 개선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27일 “(양국 관계에) 조만간 가시적인 성과가 있을 것”이라며 희망적인 메시지를 보낸 것도 기대감을 키웠다.
전문가들은 마지막까지 협상에 최선을 다하되 만일의 사태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현정택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은 “한국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피해 나갈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는 미국과 300억달러의 통화스와프를 체결한 것”이라며 “한때 700억달러 상당의 통화스와프를 유지했던 일본과 스와프 계약을 서두르는 등 통화스와프를 적극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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